유발 하라리의 『넥서스』(김영사)
구슬은 언제 보배가 되는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익숙한 속담이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엔 더욱 절실하게 들린다. 아무리 귀한 구슬이라도 흩어져 있으면 쓸모가 없듯, 정보 또한 제자리를 찾고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정보를 어떻게 꿰고, 어떤 서사로 엮어낼 것인가다.
예전엔 정보를 많이 가진 자가 권력을 쥐었다. 정보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고, 특정 계층만이 독점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것도 그런 맥락 속에 있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넓히는 것은 곧 백성을 위한 정치였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지식의 혁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가 넘쳐난다. 클릭 한 번이면 세계의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더 자주 혼란에 빠진다. 정보는 많은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알 수 없게 된 세계. 그 속에서 중요한 것은 이제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하고 해석하느냐’가 되었다.
하라리는 『넥서스』에서 정보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연결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구슬 하나하나가 별이 아니라, 그것을 꿰어 별자리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 그리고 그 스토리를 믿는 집단적 믿음이야말로 인류를 움직이는 진짜 동력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종종 진실보다 허구에 더 쉽게 마음을 연다. 사실은 불편하지만, 허구는 위로를 준다. 진실은 고통스러우나, 거짓은 안심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매혹적인 거짓 이야기 하나가 거대한 정치 세력이나 사회 운동의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사례를 여러 번 목격해 왔다. 12.3 계엄 논란과 관련해 떠돌던 가짜 뉴스들, 유튜브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선동 영상들, 그리고 그로 인해 극우적 정서가 결집되었던 과정. 그것은 단순한 ‘오해’나 ‘우연’이 아니라, 정보가 조직화되어 구조화될 때 발생하는 새로운 현실의 창출이었다.
이러한 정보와 해석의 힘은 종교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기독교의 육체와 영혼, 부활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달라졌고, 단순히 '이 교리는 맞고 저 교리는 틀리다'는 수준의 논쟁이 아니었다. 그 아래에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몸과 마음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우리는 죽은 뒤 어디로 가는가’ 같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종교는 단순히 신에 대한 믿음의 체계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해석의 틀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제, 그 해석의 자리를 인공지능(AI)이 차지하려 하고 있다. 하라리는 AI를 ‘이질 지능(alien intelligence)’이라고 부른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감정 없이 판단하고, 계산을 멈추지 않는 존재.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지만, 인간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그 지능은,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경우 제2의 제국주의가 될 수도 있고, 디지털 전체주의를 실현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무서운 건 그것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 스스로를 아날로그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자평해왔지만, 아침마다 유튜브로 뉴스를 보고, 인터넷 뱅킹과 온라인 장보기를 하고, 온갖 시스템에 내 정보를 의탁하고 사는 일상을 떠올리면, 결국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이미 너무 많은 정보가 나라는 사람으로부터 흘러나가버렸고, 이미 디지털의 일부가 되어 있다. 내가 나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시대, 이제는 어찌해볼 도리조차 없다는 자각이 씁쓸하다.
책을 덮으며 떠오른 질문은 단 하나였다. “나는 지금 누구의 이야기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정보는 더 이상 진실과 동일하지 않다. 정보는 허구와 환상을 통해서도 사회를 연결하고, 구조화하며, 권력을 만든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접하고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중요한 건 정보를 거르는 안목이 아니라, 정보를 묶고 꿰는 힘, 그 속에서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정보가 지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찰’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흩어진 구슬이 보배가 되듯, 정보가 사람을 살리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