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의 『새의 선물』(문학동네)
결핍과 불안 속에서 찾아낸 삶의 진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자크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 전문을 앞세워 시작하고 있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앵무새는 남의 소리를 흉내 내는 새다. 새로운 노래를 창조하기보다 반복과 모방을 통해 말소리를 되비추는 존재다. ‘아주 늙은’이라는 수식이 덧붙음으로써 앵무새는 더욱 희망 없는, 낡은 세상의 반복을 상징한다. 그런 앵무새가 물어온 해바라기 씨앗은 본래 생명과 희망의 징표지만, 그것의 뿌리를 내리게 할 해가 ‘어린 시절 감옥’에 갇히면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한다. 시가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는 곧 작품 속 진희의 삶과 겹쳐진다.
작품은 열두 살 소녀 진희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는 여섯 살에 어머니를 잃고 외할머니 집에서 살게 되면서 불안과 결핍, 어른들의 이중적인 세계를 들여다보며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을 고안해 견뎌내고자 한다.
“열두 살 이후 스스로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는 프롤로그의 제목처럼, 그는 나름의 틀을 정해놓고 그 틀로 세상을 보고자 하는데, 그런 태도는 서른이 넘어도 달라지지 않음을 작품은 보여준다. 여기서 ‘성장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음, 믿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방어적 성숙이다. 너무 일찍 세계의 배신을 경험한 소녀가 선택한 방식이다.
작품은 “나는 쥐를 보고 있다”로 시작하여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나는 아폴로 11호를 보고 있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로 말미를 장식한다.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시에서 드러낸 ‘새’가 아니라 ‘쥐’다. 쥐는 이야기를 촉발시키고 마무리하는 장치일 뿐 아니라,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환기시키는 핵심 상징이다.
쥐는 하늘을 비상하는 새와 달리 수챗구멍이나 똥통을 기어다니는 더럽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그려진다. 어린 시절부터 화자가 집착해 바라보는 쥐는 소녀가 처한 환경의 불안과 굴레를 의미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쥐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녀의 삶이 유년 시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화자의 불안을 떠받치는 기둥이자, 성장의 중단을 드러내는 표상이며,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삶의 굴레를 드러내는 메타포라 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쥐와 함께 무궁화호와 아폴로 11호가 병치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무궁화호는 평범하고 반복적인 현실의 상징, 아폴로 11호는 인간이 꿈꾸는 초월과 자유의 상징이다. 그러나 두 상징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 여전히 쥐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초월·희망을 꿈꾸지만, 실제 삶은 불안·죽음·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작가는 ‘초판 작가의 말’에서 “젊음을 다 보내버릴 때까지도 나는 네 귀가 꼭 들어맞는 도형처럼 살았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네 귀가 꼭 들어맞는 도형’은 작품 속 진희가 말하는 “열두 살 이후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는 선언과 맞아떨어진다.
진희는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든다. 그 안에는 동정심, 선과 악, 불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 약속 등이 있다. 그것들은 진희가 직접 보고 경험한 배신의 결과다. 동정심은 엄마 없는 진희를 향한 동정은 구원이 아니라 굴레였다. 동정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낙인을 찍고 얽매는 힘으로 작용했다. 할머니는 “삼신의 마음에도 선과 악이 같이 있다”고 말한다. 진희는 이 말을 통해 인간 안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며, 그것을 단순히 나눌 수 없다는 인식을 체득한다. 허석이 서울로 떠나며 “편지를 하겠다”는 약속은 기대하는 날에 지켜지지 않는다. 약속은 신뢰의 근거가 아니라 배신의 씨앗으로 나타난다. 불변, 유일성, 동정, 선악, 약속…. 이 모든 항목은 주인공이 어린 시절 몸으로 겪은 실패의 기록이자, 그가 만든 내적 방어 논리다.
작품의 큰 줄기는 사랑에서 시작된 배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모와 이형렬의 사랑은 경자로 인해 배신을 당하고, 진희는 허석에게 끌리지만 그가 이모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상심한다. 순정파 깡패 홍기웅의 사랑 역시 집착과 배신으로 귀결된다. 작품은 ‘오직 하나뿐인’ 사랑, 절대적인 구원, 유일한 운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차갑게 드러낸다.
진희는 결국 깨닫는다. “유일한 사람, 유일한 사랑 같은 건 없다.” 사랑은 언제든 변하고 배신당하며, 행복조차도 불변하지 않다. 그러나 이 냉혹한 결론이 곧 절망만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 관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순간, 삶과 사랑의 진실에 더 가까워진다.
자크 프레베르의 시가 보여주듯, 우리에게도 새의 선물은 주어진다. 그러나 그 씨앗은 어린 시절의 감옥이라는 그늘 속에서 싹트지 못한다. 진희의 이야기는 바로 그 진실을 드러낸다. 유년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된다. 그러나 그 어둠을 직시하고 껴안을 때에야, 우리는 삶과 사랑의 진실에 다가선다.
『새의 선물』은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성장하지 못한 성장’, 결핍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드러내는 서사다. 지나간 어느 한 시절은 우리의 성장을 멈추게 하고, 그 굴레는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된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그 결핍과 불안을 껴안을 때에야 비로소 삶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깊듯, 삶은 사랑과 배신,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이 서로를 전제하며 얽혀 있다. 『새의 선물』은 인간이 자유를 꿈꾸면서도 불안 속에 살아가는 존재임을 역설한다. 결핍과 불안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삶을 버티며, 또 어떤 방식으로 사랑과 자유를 꿈꾸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