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의 「무진기행」(문학동네)
안개 속에 갇힌 여행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눅눅해진다. 그 이유는 작품 속 안개 때문이다. 무진을 가득 메운 안개는 내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처럼 느껴진다. 포구 근처가 집이라 늦가을 날씨가 따뜻할 때면 밤새 아파트로 밀려온 안개가 진을 치고 있는 장면은 참으로 당혹스럽다. 길을 걷다 보면 방향 감각을 잃고 어디쯤 와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세상과 단절된 듯한 기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작품의 주인공이 무진의 안개 속에서 질식하듯 답답해하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와 같지 않았을까. 또한 해결되지 않은 무거운 숙제가 남겨진다는 점에서 개운감이 덜 하다. 그것은 윤희중이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고 무진을 떠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윤희중은 보통 여행이 주는 해방감이나 일탈의 설렘으로 무진을 찾은 대신 서울에서 도망치듯 무진을 찾았다가 도망치듯 무진을 떠나고 말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무진은 안개가 명물인 고장이고 그곳은 주인공 윤희중의 고향으로서 그의 유년기의 어둡고 축축하고 부끄러운 기억을 소환하는 장소다. 그의 무진 방문은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무언가 새출발이 필요할 때였지만 무진에서 그는 삶의 활력과 용기를 얻기보다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로 더러운 옷차림과 누런 얼굴로 골방에서 뒹굴며 지냈다. 무진은 결코 해방이나 일탈을 허락하는 여행지가 아니라, 그가 도망쳐온 현실의 허위와 자기기만을 드러내는 거울이었다.
그건 무진이라는 지명에서 볼 수 있는 안개와 무관하지 않다. 안개는 시야를 가리고 방향 감각을 흐리게 하여 현실을 또렷이 직시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시에 안개는 모든 사물을 동일하게 덮어버림으로써 경계와 차이를 지워버리는 무(無)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무진의 안개는 주인공에게 새로운 출발의 길을 열어주는 빛이 결코 될 수 없다. 오히려 그가 도망쳐 온 현실과 내면의 허무를 더욱 짙게 드러내는 장막이다. 윤희중은 무진에서 삶의 열정이나 활력을 회복하기는커녕, 자신의 공허와 무력함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뿐이다. 따라서 그는 서울로 돌아가면서도 무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이러니한 운명 속에 머무른다.
안개의 고장이면서 무진은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작품에서 그런 속물로 여겨지는 인물 중에는 윤희중을 오빠라고 부르며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하는 중학교 음악 교사 하인숙이 있다. 윤희중에게 그녀는 진정한 구원의 손길이라기보다, 과거 무진을 떠나고 싶어했던 자신의 분신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잠시 흔들리며 손을 잡았다가 곧 놓는다. 그녀를 끝내 데려가지 않은 것은, 윤희중이 타인과 다를 바 없는 속물임을 스스로 확인한 행위이자, 동시에 과거를 다시 받아들일 용기조차 상실한 그의 현실적 무력함을 드러낸다.
하인숙은 세무서장 조의 집에서 성악을 공부한 사람답게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을 부르기도 하지만, 윤희중이 본 무진의 현실은 그 목소리가 어울릴 만한 무대가 아니었다. 화투짝이 널브러진 퇴폐적인 공간 속에서 그녀가 불러야 했던 노래는 차라리 「목포의 눈물」이었지만 그마저도 작위적이었다. 윤희중은 그 장면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광녀의 냉소를 느꼈고, 무엇보다도 시체가 썩어가는 듯한 무진 특유의 냄새를 맡는다. 무진의 풍경과 인물들 속에는 늘 죽음과 부패의 기운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작품의 서두에서 주인공이 무진의 안개를 묘사할 때 이미 드러난 시각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무진의 안개를 마치 이승에 한을 품고 떠돌다 밤마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는 입김과 같다고 했다. 안개는 단순히 풍경을 덮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죽은 자의 숨결처럼 생과 사의 경계를 흐리고,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불안과 억눌림을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무진은 또 광주역에서 마주쳤던 미친 여자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게 한다. 윤희중은 대학 시절 징병을 피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고향 집 골방에 처박혀 지낼 때 미칠 것 같았던 심정을 떠올린다. 그 기억은 무진이라는 공간과 겹쳐지면서, 무진이 곧 억눌림과 광기의 장소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더 나아가 그는 어머니 산소를 다녀오는 길에서 작부가 자살한 시체를 목격하기도 한다. 그 광경은 무진의 눅눅하고 음습한 공기와 겹쳐, 죽음과 부패의 기운이 짙게 배어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그는 어머니 무덤 앞에서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이는 무진이라는 장소가 그에게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기 존재를 압박하는 죽음 충동의 공간임을 암시한다.
결국 무진은 윤희중에게 안개와 광기, 부패와 죽음이 중첩된 공간이다. 그것은 고향이 단순히 지리적 장소를 넘어, 그가 살아온 내면의 공허와 억눌림, 자기혐오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심리적 공간으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진에서 벗어나 서울로 돌아가지만, 무진에서 맡았던 냄새와 보았던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느낀 죽음의 충동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깊숙이 남는다. 그렇다면 그가 무진을 떠나며 마주친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팻말 앞에서 느낀 부끄러움은 무엇일까? 그것은 공허와 욕망이 뒤엉킨 내면의 공간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자각한 순간이었다. 욕망을 행동으로 실현하지 못하고, 다시 서울의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자기 환멸과 허망함이 거기에 스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