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분도출판사)
꽃을 향해 가는 길
트리나 포올러스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꽃들에게 희망을』은 분도출판사본이다. 손글씨로 적어 넣은 글자는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1994년 판으로, 종이는 누렇게 바래 세월의 자국을 남기고 있다. 책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이야기는 삶에 관한, 혁명에 관한,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고, 학생들과 그밖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혁명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내용을 다루는 책이라 하지만, 정작 내게 남은 의문은 다른 데 있었다. 애벌레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제목은 꽃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또 꽃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가치화되어 있는데, 누구나 꽃이 되고자 하지 않은가, 또다시 희망을 준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선물의 쏠림 효과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경쟁의 대열에 끼어들어 어느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 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발견하여 그 길에 전념하는 자아실현형 삶을 선호하는 시대다. 그러나 한 세대 전만 해도 경쟁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고, 누구나 그 대열에 내몰려 죽기 살기로 정상이라 불리는 자리에 오르려 애썼다. 『꽃들에게 희망을』 의 애벌레들이 탑 꼭대기를 향해 몸을 던지는 모습은 바로 그 시대적 풍경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메시지를 단순히 경쟁 비판이나 탈경쟁의 선언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 오히려 꽃을 매개로 한 희망은, 정상에 오르려는 집착을 넘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길을 보여준다. 나비가 된 애벌레가 꽃과 맺는 만남은, 경쟁의 끝에서 오는 허무를 넘어서는 또 다른 삶의 가능성, 곧 서로를 바라보고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희망을 상징한다.
더욱이 줄무늬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는 사랑과 함께하는 집단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제시한다. 두 애벌레는 치열한 경쟁의 대열에서 벗어나 서로를 바라보며 관계를 맺는다. 정상에 오르려는 욕망이 아닌, 사랑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택한 것이다. 탑을 향해 올라가는 수많은 애벌레들이 ‘성공’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려 있을 때, 줄무늬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는 서로의 존재 자체를 통해 다른 삶의 길을 발견한다. 이들은 사랑과 연대가 경쟁을 넘어선 새로운 희망임을 보여준다.
그 사랑의 선택은 작품의 결말과도 이어진다. 줄무늬 애벌레가 마침내 나비가 되어 꽃을 찾아갔을 때, 그 장면은 단순한 변신의 순간이 아니라 관계와 사랑을 통해 완성된 존재의 실현을 뜻한다. 꽃은 애벌레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나비가 되어야만 맺을 수 있는 새로운 관계의 장이다.
결국 『꽃들에게 희망을』은 경쟁의 탑을 오르는 삶이 아니라, 사랑과 관계 속에서 진정한 자기 실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줄무늬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의 사랑은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상징적 사건이며, 나비가 꽃에게 닿는 장면은 그 사랑의 완성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선물의 쏠림 대상이라고 여겼던 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찾아가는 꽃은 단순히 외부에서 주어진 ‘보상’이나 ‘목표’인 것일까. 오히려 그것은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했을 때 비로소 맺을 수 있는 관계의 자리로 봐야할 것이다. 꽃은 정상처럼 오르거나 쟁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존재가 변모했을 때에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만남의 장으로 말이다.
따라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의 ‘희망’은 꽃이라는 대상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은 나비가 되어 꽃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사랑과 관계 속에서 변화하고 성숙하는 존재의 힘에 있다. 희망은 탑을 오르는 경쟁의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을 선택했을 때 비로소 열리는 길이다. 줄무늬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가 보여준 사랑은 그 길의 시작이었고, 나비가 꽃과 만나는 순간은 그 사랑이 완성된 장면이었다. 희망은 외부에서 던져진 선물이 아니라, 자신의 변화를 통해 관계 속에서 스스로 길어 올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