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성과힘)
입주권은 되찾았으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연작소설집으로 12개의 작품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재개발로 밀려난 도시빈민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현재와 과거, 현실과 꿈이 혼재하여 내용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다. 노비매매 문서의 경우는 혼자 힘으로 해독이 어려울 정도다. 어린 영희가 몸을 파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다. 어쨌든 꾸준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이 작품은 난장이 가족이 입주권을 잃게 되었다가 다시 찾게 된 가슴 아픈 이야기다. 3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난장이의 세 자녀 영수, 영호, 영희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서술된다.
큰아들 영수가 주인공인 1장은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면서 시작된다. 철거 계고장에는 20여일의 기한을 두고 철거를 명령하고 있어 난장이네 가족도 입주권을 팔고 떠날 수밖에 없는 시점이 찾아왔음을 알린다. 입주권이 있어도 입주할 돈이 없고, 입주권을 팔아 명희 어머니에게 빌린 전세 자금을 갚고 나면 몇 푼 남지 않는 현실에서 난장이 가족은 22만원 하던 입주권이 조금이라도 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영수는 한때 이웃집 명희를 좋아했다. 영수는 명희가 그토록 싫어하는 공장을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공장에 취업함으로써 명희와의 사이가 멀어지고, 명희 역시 최하층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원치 않은 아이를 배고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영수가 학교를 그만 두자 동생들도 몇 달 간격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공장으로, 빵가게로 일을 나간다.
난장이 집안은 대대로 노비였는데 영수는 인쇄공장에서 조판을 짜다가 그것이 노비매매문서인 것을 알게 되고 그 일로 여러 날 부모와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강한 영수는 인쇄공장을 다니면서도 고입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한다. 그해 늦가을 건강이 나빠졌던 아버지는 3년 반도 지난 옛이야기를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말하며 정신건강에도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철거 계고장이 날아온 날, 아버지는 벽돌 공장 굴뚝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둘째 아들 영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2장에서는 입주권이 팔리고 그날로 영희가 사라지며 철거 날짜를 하루 넘겨 집이 헐리게 되는 수난을 겪는다. 영희가 사라지자 어머니는 공장에서 잘린 오빠들 탓을 한다. 형제는 공장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려다가 발각돼 쫓겨나게 되는데 아버지는 이를 두고 ‘진실을 말하고 묻혀버린 사람’이라고 부른다. 영호가 보기에 형은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지녔고, 아버지와 지섭은 ‘대기권 밖을 날아다니는 사람’으로 비친다. 그에 비해 영희는 현실적이다. 아파트를 짓고 있는 현장 근처의 복덕방에까지 가서 입주권 시세를 알아볼 정도다.
입주권이 검정 승용차를 탄 남자에게 25만원에 팔리자 그 중 15만원을 명희 어머니에게 갚자 명희네는 다음날 이삿짐을 챙겨 동네를 떠난다. 아버지는 살기가 힘들다며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고 한다. 지섭에게 말해서 쇠공을 쏘아올려 보여준다고 말하기도 한다. 식구들은 집을 나간 영희를 찾느라 철거 날을 하루 어기게 되고 영희 소식은 끝내 듣지 못한 채 지섭이 사가지고 온 소고기를 끓이고 구워서 마지막 식사를 하게 된다.
“대문을 두드리던 사람들이 집을 싸고 돌았다. 그들이 우리의 시멘트담을 쳐부수었다. 먼저 구멍이 뚫리더니 담은 내려앉았다. 먼지가 올랐다. 어머니가 우리들 쪽으로 돌아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아버지가 구운 쇠고기를 형과 나의 밥그릇에 넣어주었다. 그들은 뿌연 시멘트 먼지 저쪽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대로 서서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 장면은 마치 장례식 분위기처럼 느껴진다. 살아오던 집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으니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다. 삶의 터전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에도 가족은 밥상을 지킨다. 그러나 그 침묵의 식사가 끝나자 곧 폭력이 들이닥친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집을 부수자 지섭은 철거 여부를 확인하는 사나이에게 오백년이 걸린 집을 헐었다면 시비를 걸며 폭력을 휘두른다. 그러자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몰려와 지섭을 폭행한다. 난장이는 싸움을 말리려는 자식들에게 ‘아는 사람이 말하게’ 하라며 말린다. 지섭이 죽은 듯이 쓰러지자 그들은 지섭을 끌고 가고 아버지는 그 뒤를 따른다. 영호는 밤새 영희를 찾다가 잠을 자지 못한 탓에 쓰러져 자면서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집어던지는 꿈을 꾼다.
3장은 학교를 그만두고 빵집에서 일을 하던 난장이의 딸 영희가 주인공이다. 영희는 검정 승용차를 탄 남자가 입주권을 사가자 줄 끊어진 기타를 들고 남자를 따라나선다. 입주권을 산 남자에게서 어떻게든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서다. 남자는 영희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가 그 뜻이 완고함을 알고 남자가 요구하는 어떤 일이든 ‘안 돼요’라는 말을 하지 않을 조건을 내세우며 영희를 받아들인다.
영희는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는 일은 물론이고 그의 사무실에서 주택에 관한 신문 기사를 오려 스크랩북에 옮겨 붙이는 일을 한다. 어머니는 17살이 된 영희에게 순결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어둠 속에서 남자를 생각하는 것조차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는데 그런 영희가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게 되자 꿈에 나타나 증조할머니가 주인 서방과 잠자리를 하여 죽임을 당했다는 흉측한 얘기를 전한다.
영희의 목적은 입주권을 되찾는 것이었으니 자기네 입주권이 팔리지 않게 금고 제일 밑에 가게 뒀다가 남자가 자는 틈에 마취제를 놓고 금고에서 매매계약서며 표찰, 계고장, 돈, 칼 등을 들고 도망친다. 살던 행복동으로 돌아온 영희는 매매계약서를 찢어버리고 동사무소, 구청, 주택공사를 차례로 돌며 입주 계약 절차를 밟는다. 그리고 신애 아주머니 집을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소식을 들은 영희의 뇌리에는 아버지가 피를 흘리며 어머니 등에 업혀 오는 모습이며,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는 모습이며,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서서 손을 들어 보이는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그녀는 흐느끼며 큰오빠에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른 악당을 죽여 달라고 외친다.
작품은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른 사람을 죽여버리겠다’는 절규로 끝난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가족에게 쏟아진 사회적 멸시,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현실은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불행으로 남는다. 난장이의 죽음은 한 가족의 비극으로만 치부될 뿐, 사회적 사건으로 기록되지 못한다.
비록 난장이는 작은 공을 쏘아올리지 못했지만, 이 작품 자체가 작은 공이 되어 집을 잃은 사람들, 제도권에서 밀려난 사람들,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날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 작은 궤적은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희망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