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빈자리

by 인상파

법정의 <무소유>(범우사)


무소유의 빈자리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내게 오래도록 잔향을 남긴 책이다. 스님의 입적 이후 절판 소동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앞다투어 이 책을 찾았다. 그것은 단순히 희귀본을 소장하려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님의 부재가 남긴 공허를 메우려는 갈망, 혹은 다시금 ‘가지지 않음’의 의미를 확인하려는 시대적 목마름이 불씨가 되었을 터. 그렇게 『무소유』는 한동안 서점에서 가장 뜨거운 책이 되었고, 나 또한 그 대열에서 책을 구입했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스님의 책은 2판 77쇄라고 찍혀 있다.


무소유, 얼마나 경건한 말인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소유하지 않고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우리는 몸 하나로 세상에 던져진 뒤 그 몸을 지탱하기 위해 평생 무언가를 얻고 지키며 살아간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다시 몸 하나만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렇다면 무소유란 적게 가지라는 뜻도, 적당히 가지라는 뜻도 아닐 텐데, 나는 그것이 마치 자신을 버리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스님이 말하는 무소유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그는 먼저 간디의 삶을 예로 든다. 1931년 런던 원탁회의에 참석하던 길, 세관원이 그의 짐을 묻자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 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그 소박한 나열은 곧 간디의 삶 전체였고, 스님은 『간디 어록』의 그 구절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난초를 기르면서 또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스님은 한때 난초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는데 그것은 차츰 기쁨이 아니라 불안의 근원이 되었다. 장마철 봉선사에 머물며 바깥에 내놓은 난초를 떠올리자 잠깐 내민 땡볕에 시들 걸 걱정하느라 산길의 풍경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랑이라 여겼던 것이 사실은 집착이었다. 그런 난초를 친구에게 내어주고 나서 해방의 가벼움이 찾아왔다. 무소유란 바로 그 집착을 놓는 일이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삶의 양식을 ‘소유의 양식’과 ‘존재의 양식’으로 나누었다. 소유의 양식에 사는 사람은 무엇을 갖느냐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한다. 테니슨이 꽃을 꺾어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던 태도가 그랬다. 반대로 존재의 양식에 사는 사람은 ‘갖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서 충만을 느낀다. 바쇼가 그저 꽃을 바라보며 자연과 하나 되려 했던 태도가 그것이다. 스님이 강조한 무소유 역시 이 존재의 양식에 닿아 있다. 난초를 손에 쥐었을 때는 불안했지만, 내어주었을 때 오히려 충만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삶을 돌아보면 소유도 아니다. 그저 쓸모도 없는 것들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이사 온 지 15년이 넘은 집 안 곳곳에는 고장 나도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장롱과 수납장에, 빈 공간마다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저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은 묵은 그림자처럼 나의 정신을 어지럽힌다. 『무소유』라는 책을 읽는 게 무색해진다.


앎과 행동이 따로 놀고 있다. 무소유는 어쩌면 이 불일치를 일치시키려는 몸부림일지 모른다. 버리지 못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집 안에서, 무소유라는 말이 남긴 빈자리를 새기며 그 빈자리가 곧,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이자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임을 알아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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