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낙엽기」(가람기획)
낙엽의 숨결
봄이 새싹과 꽃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단연코 단풍과 낙엽의 계절이다. 낙엽을 떠올릴 때면 나는 두 장면을 함께 기억한다. 하나는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이고, 또 하나는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며」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에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고, 「낙엽을 태우며」에서는 진한 커피향이 풍겨온다.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은 단순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그는 낙엽을 밟는 사람의 발자취에서 낙엽의 허망함을 읽어내고, 언젠가는 인간 또한 낙엽처럼 스러질 운명을 알아차린다. 시몬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몰라도, 낙엽 쌓인 길을 덮어놓고 걷고 싶은 마음은 비단 그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시몬은 낙엽 쌓인 길 위에 선 우리 모두의 모습일 것이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낙엽이 떨어지면 곧바로 쓸어 모으지 않고,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잠시 쌓이게 두었다가 치우기도 한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낙엽이지만, 밟힐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그 경쾌한 소리는 여전히 생의 잔향을 들려준다.
그러나 이효석의 낙엽은 길 위의 낙엽이 아니라 집안 화단에 선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다. 그러니 그것을 밟는 행위는 그리 적절하지 않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시골 마당에는 세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는데, 늦가을이면 누런 감잎이 바람에 휘날리며 마당을 온통 어지럽히곤 했다. 단풍의 화려함과는 달리 그것은 지저분하고 성가시게 느껴졌고, 갈퀴로 긁어모으고 빗자루로 쓸어 모아 저물 무렵 다른 쓰레기와 함께 마당가에서 태워야 했다. 그 연기에서는 커피 향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허연 연기와 함께 비닐과 플라스틱이 뒤섞여 타며 내뿜은 고약한 악취는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처럼 고상하거나 낭만적인 풍경을 기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생활의 고단함과 버려진 듯한 공허를 체감하곤 했다.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며 글을 쓰고, 아궁이에 목욕할 물을 데우고, 그 물속에서 아이와 함께 몸을 담그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생활의 단편들을 기록했다. 하지만 1980년대 시골 소녀에게 1930년대 작가의 생활은 사뭇 고급스럽고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언젠가 그런 생활을 접해보고 싶다는 동경으로 자리잡았다.
“정리도 못한 가닥가닥의 생각을 머릿속에 잡아넣고 살을 깎을 정도로 애쓰고 궁싯거리며, 생활 일에 단 한 시간 허비하기조차 아깝게 여기고 싫어하던 것이 생활에 관한 그런 사소한 잡일을 도리어 귀중히 알게 된 것은 도시 시절의 탓일까.”
낙엽을 태우며 글쓰기보다 소소한 생활의 발견에 기쁨을 누리는 그와는 달리, 나는 그 반대편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시골에서 쓰레기와 함께 태워지는 낙엽이 아니라, 커피향이 난다고 묘사된 그 낙엽을, 정말로 커피향이 나는지 알고 싶었고, 낙엽을 태우며 상념에 젖어드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제강점기의 ‘순수 작가’라는 명칭은 결코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개인의 삶에만 몰두하고 민족을 배반했다는 의미가 다분히 내포돼 있었기 때문이다. 2024년 12·3 계엄령이 내려졌을 때, 눈 내린 광장에서 은박지를 두르고 행동으로 보여준 이들을 보며 나는 따뜻한 방 안에서 말할 수 없는 뭉클함을 느꼈다. 누군가는 심적으로 응원하고, 누군가는 전사처럼 행동으로 맞선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작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계관과 취향과 기질이 다르니, 그에 반응하는 방식과 정도 또한 달랐을 것이다. 글쓰기가 자기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사변적 글쓰기를 무조건 나무랄 수 없는 이유다. 행동파도 있고, 관조하는 파도 있는 법이다. 민족과 나라를 배반하지 않은 범위에서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글을 쓴다면, 조금은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해서 비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중학교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국어 교과서에서 「낙엽을 태우며」를 처음 접했을 때 국어 교사는 이상화나 이육사에게서 시대정신을 언급하며 이효석을 ‘낙엽이나 태우며 커피나 운운하는 한심한 작가’로 폄하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낙엽을 태우며 가을의 정취를 음미하고 인생의 조락을 애상하는 것이 시대와 무슨 상관인가. 나라가 망했어도 낙엽은 여전히 떨어졌고, 그걸 붙잡아 두려는 작가의 시선은 농밀했으니. 인간의 섬세한 감정의 결까지 역사의 목소리로 검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효석의 한 폭의 풍경 같은 글이 있기에, 우리의 가을은 소멸 속에서 충만을 배우고, 인생은 애잔함 속에서 그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