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이 다른 소신공양과 혈서

by 인상파

김동리의 「등신불」(창작과비평사)


방향이 다른 소신공양과 혈서


김동리의 「등신불」을 학창시절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만적이 소신공양으로 죽어갈 때 마치 내 몸에도 불이 붙은 듯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한 인간이 제 몸을 불사르며 부처에게 귀의한다는 발상이 종교적 신념이라기보다 가장 잘못된 길이 아닐까 싶었다. 몸을 불태워 죄를 씻는다는 행위는 ‘살생을 하지 말라’는 불가의 근본 가르침과도 모순되었고, 그래서 더욱 이율배반적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 만적이 취단식을 시작으로 한 달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아 있는 화석이 되어가는 과정, 들기름에 몸을 적시고 머리에 향로를 이고 불에 휩싸이는 장면을 무심히 넘길 수가 없다. 아무리 어머니의 악행과 문둥병에 걸린 이복형제를 위해 죄를 씻으려 했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길을 택해 결국 ‘자살’에 이르는가.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든, 나로서는 그저 인간의 삶을 더 고통스럽게만 만드는 고행처럼 여겨졌다.


이 작품은 액자소설이다. ‘나’는 1943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대정대학에 재학하다가 중국 남경에서 학병으로 끌려간 인물이다. 주둔군으로 남게 된 그는 며칠 후면 인도차이나나 인도네시아로 출정해야 했고, 결국 탈영을 결심한다. 입대 전부터 불교에 귀의하여 살아남으려 했던 그는 중국 불교학자의 명단을 미리 입수해 두었고, 그 가운데 진기수라는 인물을 찾아가 혈서를 써 보이며 도움을 청한다. 식지를 깨물어 “살생을 면하여 부처님 은혜에 귀의한다”는 혈서를 내밀었을 때, 비로소 그의 본심이 받아들여지고 그는 정원사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정원사에서 불자로 살아가던 ‘나’는 어느 날 금불각의 불상을 보게 된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금불각은 돈 많은 신자들 외에는 좀처럼 개방해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신도들의 새전을 긁어모으기 위한 술책 정도로 넘기고 만다. 그리고 금불각의 금불도 보통의 부처님 얼굴처럼 온화하고 거룩하고 존엄이 있는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실제로 목격하고는 상상밖의 모습이라 크나큰 충격을 받는다.


“머리 위에 향로를 이고, 두 손을 합장한, 고개와 등이 앞으로 좀 수그러진, 입도 조금 헤 벌어진, 그것을 불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없이 초라한, 그러면서 무언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사무치게 애절한 느낌을 주는 등신대(等身大)의 결가부좌상(結跏趺坐像)이었다.”


그 불상이 바로 만적의 등신불이었다. 주지 원혜대사는 ‘나’에게 등신불의 내력, 곧 만적선사의 소신공양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악행으로 인한 죄책, 문둥병에 걸린 이복형제를 향한 연민, 스승의 은혜를 갚고자 한 결심은 끝내 만적을 소신공양으로 이끌었다.


그는 들기름에 몸을 적시고 향로를 머리에 이운 채, 살아 있는 몸 그대로 불꽃 속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남겨진 불상이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새긴 듯한 형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들려준 뒤 원혜대사는 갑자기 ‘나’의 식지를 들어보라고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무언의 행위는 만적의 소신공양과 ‘나’의 혈서를 같은 선상에 두는 암시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둘은 전혀 다른 길이었다. ‘나’의 혈서는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한 몸부림이었고, 만적의 소신공양은 어머니와 이복형제의 죗값을 온몸으로 짊어지려는 자기희생이었다.


그럼에도 작품은 두 행위를 나란히 두며 불은(佛恩)의 의미를 묻는다. 살생을 면하고자 한 마음, 죄를 끊고자 한 결의, 그것이 곧 부처의 은혜라는 듯.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그 장면이 치기 어린 합리화처럼 느껴진다. 만적의 불꽃과 ‘나’의 혈서 사이에는 분명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차이가 지금도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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