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의 <만세전>(창비 )
‘묘지’같은 조선을 떠나가는 식민지 문학청년
염상섭의 <만세전>은 1922년 <신생활>에 「묘지」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검열로 중단되는 수난을 겪고, 1924년 <시대일보>에 연재될 때에는 제목이 ‘만세전’으로 바뀐다. 조선의 현실을 ‘묘지’로 압축해 보여주던 원래의 강렬한 어둠과 죽음의 이미지는, ‘만세전’이라는 시간 개념으로 바뀌면서 한결 옅어진다. 그럼에도 작품의 무대가 1919년 3·1운동 직전, 정확히는 그 전 해 겨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만세’ 이전 조선의 참혹한 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러한 절망이야말로 만세운동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었음을 보여준다.
일본 유학생 이인화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는다. 남편이라면 당연히 임종을 지켜야 마땅할 터인데, 그는 시험을 미루고 부랴부랴 귀국 준비를 하면서도 정작 마음은 뜨뜻미지근하다.
“내가 가기로 죽을 사람이 살아날 리도 없고, 기위 죽었다 할 지경이면 내가 아니 간다고 감장할 사람이야 없을까?”
그의 생각은 이렇게 냉랭하다. 두 살 연상의 아내와는 열세 살에 혼인했고, 열다섯 살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명목으로 집을 떠났다. 어린 신랑이 아내에게 정을 붙일 겨를이 있었을 리 없다. 일본 땅에서 그는 신문물을 접하고, 신여성과 교류하며, 술집 여종업원들과 노닥거리느라 아내는 늘 뒷전이었다. 그러니 아내의 임종 소식에도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굳이 자신이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주저했던 것이다.
심지어 전보와 함께 온 돈으로 그는 이발소에 들르고, 서점에서 잡지를 사고, 술집에서 여종업원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중 정자와는 특별한 감정이 있는 사이였기에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조선 유학생이라 하면, 돈 있는 집 자제에 인물 좋은 청년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붙었는데 이인화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아내가 위독한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여인들과의 인연을 좇는다. 기차를 타고 도중에 신호에 내려 한때 좋아했던 을라를 만나는 등 아내가 위독하여 경성으로 가는 마당에도 그의 여성에 대한 집착은 계속된다. 경성행 기차에서는 기생에게 말을 걸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아내의 장례를 치른 뒤에는 정자와 을라 중 누구를 아내로 맞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하는데 어떤 점에서 나약하고 한심한 인간적 면모라 하겠다.
식민지 본국 일본에서는 정작 자유롭던 그의 몸도 하관에서 부산행 배를 타자 일본 형사의 감시하에 놓이게 되면서 나라 잃은 백성의 슬픔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이 강한 그는 이론상으로는 무산계급을 동지로 여기는 것이 가능하나 실제로는 함께 할 수 없음을 경성으로 가는 도중 뼈저리게 느낀다. 일본인 상인이 조선 농민을 속여 일본의 지옥 같은 공장과 광산에 팔아넘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지며 조선 땅 어디서나 풍기는 죽음의 냄새를 맡게 된다. 살아 있는 것조차 무덤 속을 헤매는 듯한 것이 조선인의 삶이었다. 죽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이 죽어서 파묻힐 묘지에 대해 열을 내는 현실, 대전역에 정차했을 때 등에 아기를 업은 채 결박된 여죄수, 시든 배춧잎처럼 축 꺼져 있던 젊은이들의 모습에 그는 참담해진다.
“이게 산다는 꼴인가? 모두 뒈져버려라!”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
“공동묘지다! 공동묘지 속에서 살면서 죽어서 공동묘지에 갈까봐 애가 말라 하는 갸륵한 백성들이다!”
그의 절규는 날것의 감정이자, 그 시대 조선인들의 운명을 압축한 울분이었다. 경성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이미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그가 쉴 곳은 없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조선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가족의 만류로 열흘 남짓 머물며 정자의 편지에 답장을 쓴다. 그 편지 속에서 그는 민족의 자괴감과 무력감을 절절히 토해낸다.
“소학교 선생님이 환도를 차고 교단에 오르는 나라가 있는 것을 보셨습니까? 나는 그런 나라의 백성이외다. 고민하고 오뇌하는 사람을 존경하시고 편을 들어주신다는 그 말씀은 반갑고 고맙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내성하는 고민이요 오뇌가 아니라, 발길과 채찍 밑에 부대끼면서도 숨이 죽어 엎디어 있는 거세된 존재에게도 존경과 동정을 느끼시나요?…”
연민은 아무것도 구해내지 못한다는, 비통한 고백이었다. 그는 일본인 정자와 맺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이 아닌 ‘우정’을, 그것도 끝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돈 백 원을 동봉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그녀에게 최소한의 의리를 지킨 것이다. 유약한 식민지 청년인 그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면 정자를 정말 안 만날까. 지켜볼 일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생의 신분을 누렸지만, 정작 이상은 없고 감상과 유탕만 남아 있던 청년 이인화. 그 모습은 염상섭의 또 다른 작품 <삼대>의 덕기와 겹쳐 보인다. 그 둘은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 방황하던 문학청년의 자화상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