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해의 〈탈출기〉(문학과지성사)
궁핍이 남긴 편지
신경향파 문학의 기수로 각광을 받은 최서해(본명 학송)의 작품이다. 〈탈출기〉는 박군이라는 인물이 김군에게 보낸 편지의 답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간도로 이주해 궁핍하게 살아가던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 박군은 더 이상 생존이 힘든 가족을 저버리고 탈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고백한다. 그것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가족의 생사와 직결된 문제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했던 결단이었다. 독자는 편지를 통해 가난이 강요된 선택의 무게임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박군!
군의 탈가 이유를 김군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잘 알게 되었네. 김군이 수차례 편지를 보내도 자네는 답장을 않더니, 김군의 귀가 재촉에 탈가 이유를 그제사 알려오더군. 가족의 생사와 관련된 중대한 일임에도 탈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충분히 알게 되었네.
차라리 잘 됐지 뭔가. 자네가 가족 곁에 남아 있었다손쳐도 가족들의 생계가 해결되었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야. 자네가 있어도 가족은 굶기를 밥 먹듯 했으니, 자네가 가족을 버린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거야. 가족들도 동량인 자네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네가 있었을 때처럼 품이라도 팔면 입에 풀칠은 못 하겠는가. 아니면 어떤 성품 훌륭한 사람이 자네의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쳤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게.
자네는 5년 전, 노모와 처를 데리고 고향에서 ‘천부금탕’이라는 간도로 이주했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고향에서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었지. 가져간 돈도 바닥나고 중국인 지주에게 땅도 빌리지 못하고 품을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지. 자네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내도 품을 팔기는 마찬가지였지. 세 식구가 그리 부지런히 일을 해도 식구들이 배를 곯아야 하는 그 기막힌 현실 앞에서 자네는 울분에 가까운 분노를 터뜨리기도 하더군.
“부지런하다면 이때 우리처럼 부지런함이 어디 있으며 정직하다면 이때 우리 식구같이 정직함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빈곤은 날로 심하였다.”
그러다 자네는 만삭인 아내가 자네 몰래 길가에 버려진 귤껍질을 먹는 것을 목격하고서는 다시 부지런히 일해 식구들을 먹여 살릴 궁리를 하며 정신을 차렸지. 대구어 장사를 시작하더니 그걸 팔아 받은 콩으로 두부 장사를 시작했지. 두부 장사에 온 식구가 매달렸지만 그것도 남은 것은 몇 푼 안 되고, 더욱이 그것이 쉬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쉰 두붓물로 끼니를 해결하고는 했지. 두부 만드는데 필요한 땔감은 중국인 임자의 산에서 밤중에 몰래 해 나르기도 하면서 발각돼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지.
날은 추워지고 일자리가 없으니 식구들 볼 낯이 없어져 자네는 모질고 나쁜 마음을 먹기도 하더군.
“시퍼런 칼이라도 들고 하루라도 괴로운 생을 모면하도록 그네들을 쿡쿡 찔러 없애고 나까지 없어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칼을 들고 나서서 강도질이라도 하여서 기한을 면하든지 하는 수밖에는 더 도리가 없게 절박하였다.”
자네가 나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자네의 밑바닥 생활은 자네에게 ‘험악한 제도의 희생자’로 살아왔음을, 지난 시절의 자신은 ‘최면술에 걸린 송장’에 다름 아니었음을 깨닫게 했지. 죽은 송장으로서는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없기에 자네는 최면술에서 깨어나 ‘허위와 요사와 표독과 게으른 자를 옹호하고 용납하는 이 제도’를 깨부숴야 함을 자각하더군. 그러려면 식구들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
자네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혼자의 힘으로 사회의 모순에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는지. 다들 눈 뜬 장님으로 노예의 삶을 살고 마는데 말이야. 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실행하기 위해 출가를 감행하는 점도 그랬네. 자네라고 가족들을 두고 떠나면서 왜 고통과 번뇌가 없었겠는가. 가족들이 눈에 밟혔을 그 심정 십분 이해하고 남음이네.
이미 탈가한 이상 식구들 걱정은 접어버리게.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은 없으니 말이네. 아직 젊은 그 혈기로 자네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자네의 어린 것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라도 흔들림 없이 싸우기를 바라네. 자네의 편지를 읽고 한 사람의 탈출이 곧 사회에 대한 질문이 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네.
고맙네.
부디 안녕하기를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