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유글 37

로봇 청소기

by 인상파

로봇 청소기


대학 동창으로 만나 어느덧 50대 후반을 넘고 있으니, 그녀와 나는 35년을 훌쩍 건너온 셈이다. 일이 주에 한 번씩 연락을 주고받고, 세상살이가 답답하고 팍팍해지는 날이면 거리낄 것 없이 욕설도 섞어가며 성토하기 일쑤다. 감정의 파고가 높은 쪽이 내 쪽인지라 자연히 목소리가 커지는 건 대부분 나다.


그런 그녀가 자기 집에 로봇 청소기가 산 것, 들어온 것 하여 세 대나 생겼다며 필요하면 하나 가져가라며 말을 꺼냈다. 웬 떡이냐 싶어 얼른 받겠다고 했더니, 차를 운전하지 않는 그녀와 차가 없는 나의 신세를 딱하게 여겼는지, 남편이 쉬는 날 함께 직접 집까지 가져다주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친구 부부는 과 선후배로 만나 결혼을 했고, 그 남편은 내 선배이기도 하다. 사양하지 않고 날짜를 잡아 기다리는데, 예순을 바라보는 선배는 못 본 10년 사이에 많이 늙었다. 50대, 60대가 되면 자기 늙는 건 못 보고 남만 늙는다고 생각한다더니 딱 그 말이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내 얼굴의 세월은 못 보면서 선배 얼굴의 세월만 한눈에 들어오니 말이다.


통화 중에 가끔 선배 얘기를 안주 삼아 떠들어대기도 해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20대의 그 청년은 온데간데없었다. 한때는 시를 쓴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아마 세월이 그 시를 국어학원 강사라는 이름으로 어디 먼 데 보내버린 모양이었다.


어쨌든 우리 집에 로봇 청소기가 이렇게 빨리 들어올 줄은 몰랐다. 앱을 깔고 작동을 시켰더니 제일 먼저 민감하게 반응한 건 바로 우리 맹이였다. 맹이는 제 일을 다 제쳐두고 오로지 청소기만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옆으로 다가오면 슬금슬금 도망가고, 멀찍이서 다시 경계하고, 혹시라도 올라타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바보 같은 녀석, 나라면 냉큼 타고 호령할 텐데. 대신 그 청소기를 ‘감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맹이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맹랑하기도 해서, 어느새 나는 청소가 아니라 맹이를 구경하는 데 시간을 빼앗겼다.


그런데 정작 그 로봇 청소기가 그리 썩 똑똑하지만은 않다. 집 구조를 파악하는 것 같더니 마루를 뚫을 기세로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밀고 있고, 턱 있는 곳에서는 툭하면 걸려 넘어져 구조요청을 하고, 가지 말아야 할 데는 기어코 가서 넘어지고는 나를 또 불러댄다.


사실 로봇 청소기를 들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집안일의 절반쯤은 ‘청소기 끌고 다니는 노동’이라고 여겼다. 유선 청소기는 코드가 발에 걸리기 일쑤였고, 길이도 짧아 콘센트를 옮겨 꽂아가며 청소해야 했다. 무선 청소기는 충전이 떨어지면 사람의 기운까지 툭 꺼져버렸다. 기계가 바뀌었을 뿐인데도 그 작은 차이가 매일의 피로를 얼마나 줄여주는지.


집안일이라는 게 별것 아닌 일 같아도, 그 별것 아닌 일이 하루를 통째로 잠식할 때가 있다. 그런데 로봇 청소기가 들어오고부터는 그 ‘잠식’의 빈도가 줄었다. 내가 직접 밀고 당기지 않아도, 바닥 곳곳을 스스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어치우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 대신 어떤 성실한 일꾼을 들인 것 같은 여유가 밀려왔다. 청소기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삶의 질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렇게 노동의 시간을 조금씩 덜어내고 나니, 그만큼 숨을 쉴 틈도 생겼다. 설거지와 빨래, 밥짓기 사이에서 ‘청소’라는 항목 하나가 빠져나가니 생각보다 체력이 남았고, 마음의 여유도 조금은 생겼다. 집안일에서 해방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바닥 하나만큼은 이제 나를 놓아준 셈이다.


그런데 해방감만 있는 건 아니다. 로봇 청소기는 나름 똑똑하면서도 어딘가 허술했고, 그걸 바라보는 맹이는 또 맹이대로 겁먹었다가, 호기심 냈다가, 도망가면서도 다시 살피는 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결국 청소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지만 맹이와 청소기를 번갈아 지켜보느라 또 다른 종류의 ‘집안 풍경’을 감당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로봇 청소기가 청소를 시작하면, 맹이 옆에 말벗이 하나 더 생긴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청소기가 하지 말아야 할 데에서 기를 쓰고 청소를 하겠다고 바득바득 우기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를 달래듯, 혹은 장난스럽게 호통치듯 말을 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 순간 문득, 사람과 고양이와 기계가 한 집 안에서 서로의 하루를 조금씩 건드리며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감회가 밀려온다. 누구는 겁을 먹고, 누구는 밀고 나가고, 누구는 그 둘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서록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