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먼 나라
신석정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와 먼 나라
이 시는 제목부터 물음으로 시작된다. 그 먼 나라를 아느냐고 묻는다. 대상은 어머니다. 확언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형식은, 그 나라가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임을 암시한다. 화자는 알고 있는 듯 말하면서도 끝내 묻는다. 어머니에게,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그 먼 나라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 했다. 그러나 시 속을 들여다보면 그곳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깊은 산림지대가 있고, 숲을 끼고 돌면 호수와 들길이 놓여 있다. 물새가 날고, 들장미가 붉으며, 노루 새끼가 뛰논다. 산비탈 너머에는 염소가 풀을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이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나라라 했지만, 이미 자연은 충만하게 살아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생명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인적이 닿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계산, 소유와 경쟁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의 세계 말이다.
이 시를 처음 만났던 것은 고등학교 교과서였다. 국어 수업 시간, 마흔을 갓 넘긴 여교사는 코맹맹이 소리로 시를 읽었다. 유독 마지막 연에서 선생님은 손을 뻗어 허공에서 새빨간 능금을 똑똑 따는 시늉을 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날 선생님은 이 시를 설명하며 예이츠의 시 구절을 함께 언급했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 연결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칠판에 적힌 말을 받아 적었을 뿐이다.
그 시절 나는 고향집에서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마음이 가라앉는 날들이 있었고, 그런 날이면 자연스럽게 고향과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혼자 방에 앉아 있다가 눈물을 훔치는 날도 잦았다. 그때 이 시는 시험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대신 불러주는 노래처럼 다가왔다.
어머니를 부르며, 어머니와 함께 아무도 살지 않은 그 먼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화자의 동경은 머리로 이해되기 전에 가슴으로 먼저 와 닿았다. 그 나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갈 수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세계를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그곳은 이미 떠나온 고향의 모습으로 겹쳐졌고,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예감이 있었기에 그리움은 더 선명해졌다.
그때는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어머니와 함께 그 먼 나라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는 시가 더욱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연인은 아직 먼 이야기였고, 친구는 함께 웃고 떠들 수는 있어도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함께 있어도 말이 필요 없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살지 않는 나라에 함께 갈 수 있는 존재로는 어머니가 제격이었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입 안에서 굴리기만 해도 먼 향수와 그리움을 부추겼다. 교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종종 어머니를 부르며 마음은 먼 곳을 떠돌곤 했다. 실제로 돌아갈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견딜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의 ‘그 먼 나라’는 이상향이라기보다, 그리움을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음의 자리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생명으로 가득한 세계는, 내가 떠나온 고향이기도 했고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자체이기도 했다. 어머니를 부른다는 것은 그 시간이 분명히 나의 일부였음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일이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나라에 비둘기와 어린 양, 염소와 노루 새끼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연약한 생명들은 경쟁과 폭력 이전의 세계를 상징한다. 인간 중심의 질서가 개입되기 전,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살아가던 상태. 화자가 꿈꾸는 그 먼 나라는 결국 자연으로의 회귀라기보다,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었던 시대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먼 나라는 결국 닿을 수 없었지만, 어머니라는 그 한마디 덕분에 잠시 그곳에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실 안에서, 교과서에서, 그리고 울컥하던 가슴속에서. 그래서 이 시는 한 편의 작품을 넘어, 교사의 능금을 따는 손짓과 이해하지 못한 채 적어 내려가던 필기, 혼자 타지에서 버티던 시절의 마음과 함께 고등학교 교실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그 먼 나라를 아느냐고, 이제는 어머니에게 묻지 않고 그곳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