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96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by 인상파

김소월의 「山」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김소월의 시는 늘 처절하다. 「진달래꽃」이 그렇고, 「초혼」이 그렇고, 이 시 역시 그렇다. 그의 시에서 이별은 결코 담담하게 처리되지 않는다. 보내는 쪽이든 남겨진 쪽이든, 김소월의 화자는 늘 한 발 더 깊이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극복도, 초월도 없다. 남는 것은 끝내 이별하지 못한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가장 혹독한 말뿐이다.


이 시는 「산유화」처럼 산에서 우는 새의 이미지를 앞세워 떠나는 사람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서 떠나는 이는 님이 아니라 화자 자신이다. 님을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인지, 이미 떠나버린 님 때문에 자신 또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산새가 시메산골 영을 넘으려고 울듯이 화자 또한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 목적지가 바로 삼수갑산이다.


그래서 떠나는 제 마음을 알기나 하듯 산새는 오리나무에서 운다. 여기서 오리나무는 그 생태와는 무관하게, 거리의 단위인 오 리(五里)를 연상시킨다. ‘오 리쯤의 거리감’은 수치로는 2km 남짓이지만, 정서적으로는 돌아서기 딱 좋은 거리로 보인다. 이별하지 못한 마음으로 그 거리는 넘기 어려운 거리가 아닐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리니 말이다. 오 리는 멀리 떠났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이고, 돌아서기에는 좋다. 오리나무는 바로 그 애매한 거리를 자연물로 굳힌 이미지다. 산새가 울며 영을 넘으려 했지만, 아직 겨우 오 리 남짓 갔을 뿐이라는 사실은, 떠나지 못한 마음의 깊이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만든다.


게다가 산에는 눈이 내린다. 눈은 길을 덮고 흔적을 지운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오늘도 하룻길이라는 말처럼, 이 길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길이다. 이 시의 화자는 육십 리까지는 가본 적이 있지만, 고개를 넘는 데에는 실패했고, 그래서 오늘도 그의 길은 하룻길에 머문다. 떠나려는 마음은 있었으되, 떠나는 길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떠나려 할수록 길은 더 험해지고, 마음은 다시 제자리에 붙잡힌다.


그럼에도 화자는 말한다. “不歸, 不歸, 다시 不歸.” 그리고 마침내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라고 외친다. 이 과잉된 반복은 결연한 선언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만큼 불귀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정말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불귀를 외칠수록, 화자는 아직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 더 또렷해진다.


삼수갑산은 단순히 먼 곳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 시대부터 관념적으로 불귀의 땅, 사람 사는 세계의 바깥으로 인식되어 온 자리다. 한 번 들어가면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오기 힘든 곳, 돌아온다 해도 죽어서나 나오는 곳. 그런 삼수갑산을 향해 다시 불귀를 말하는 이 목소리는, 이별의 언어라기보다 오히려 삶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퇴장시키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 구절은 죽음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도, 죽음을 선택한 자의 목소리처럼 섬뜩하게 울린다.


김소월의 처절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떠나야 하지만 떠날 수 없고,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이미 돌아올 가능성을 언어 속에 남겨두는 상태. 그의 시는 결단하지 못한 마음이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는 순간을 가장 날것으로 보여준다. 불귀를 되풀이할수록, 화자의 마음은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그래서 이 시는 이별의 시가 아니라, 떠나지 못하는 마음이 스스로를 유배하거나 죽음에 가까운 자리로 밀어 넣는 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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