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글 42

쪽잠

by 인상파

쪽잠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어머니가 입원한 지 25일째다. 어머니 침대 옆 보호자 간이침대에서 잠을 잔 지도 25일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자다 말다 하면서 밤을 보내고, 낮에는 낮대로 또 잠을 들지 못한다. 시간을 내 집에 가서는 집안일을 하고, 우리 집 맹이와 잠깐 놀아주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면 하루 세 끼 나오는 병원 밥을 어머니 입에 넣어드려야 한다. 병실 복도를 워커에 의지해 서너 번 걷게 하고, 도수치료와 물리치료를 따라다닌다.


이 병원 생활에서 내 유일한 낙이 있다면, 과거에 읽었던 시 한 편을 골라 생선 가시 바르듯 한 줄 한 줄 바르며 시 속에 파묻히는 일이다. 그러면 병실의 환자들은 사라지고, 시가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요리조리 뜯어보고 다시 보고, 마치 연애를 하는 느낌이다. 연애는 혼자의 몫이다. 시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전적으로 짝사랑이다. 혼자 애태우고 공상에 빠져 웃었다가 우울해했다가 하면서, 병실과는 너무 먼 세계로 가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혼자 꿈을 꾸듯 감정과 생각에 빠져 오독은 필수로 하여 한 편의 감상문을 써서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리면, 그날 하루는 뿌듯하다. 늙고 병든 병실의 얼굴들에서 외유를 할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이다.


2년 전 어머니가 고관절이 부러졌을 때는 앞이 캄캄했다. 개인적으로 우울감이 너무 깊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생각은 늘 비관적인 쪽으로만 흘러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내 직업인데, 그마저도 끊기는 것 같아 살아갈 일도 막막했다. 정말 말 그대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부러진 허리에 시멘트 시술을 하고 나니 통증도 사라졌고, 요양을 하면서 기운도 전보다 나아진 것 같다. 시를 읽고 바르며 나의 피로와 우울을 맞바꾸고 있으니, 나는 지금 그럭저럭 견디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계시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돌봄의 틈 사이로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도 늘었다. 이런 말을 적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그 덕분에 숨을 고를 수 있어 그리 답답하지만은 않다.


돌아보면 침대 옆 보호자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게 된 것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였다. 폐렴과 장염으로 잦은 입원을 반복하던 시절, 병원에서 쪽잠 자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 뒤로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병원 생활에서였다. 그때의 나는 몸도 마음도 이미 바닥이었고, 간병인으로서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병이 나아지기는커녕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의 피를 말렸다.


어머니처럼 중증 치매에 거동이 불편하더라도, 부러진 허리가 붙고 다시 걸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감지덕지한 일이다. 그런데 악화일로로 치닫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돌봄이라기보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생명은 연장되지만 고통은 심화되고, 사람은 점점 무생물처럼 변해가는 그 과정을 매일 확인하며 살아야 했다. 잠깐 눈을 붙이는 몇 분의 쪽잠마저도 죄책감처럼 따라붙었다. 그때의 쪽잠은 쉼이 아니라 버팀이었고, 다음 순간을 살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에 가까웠다.


지금의 쪽잠은 다르다. 여전히 깊이 잠들지는 못하고 자다 말다 하지만, 시 한 편을 끝까지 읽고 문장 하나를 붙잡고 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그리고 이 병실에서의 잠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갈 날이.


2025년의 12월이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가는 시간을 그럭저럭 잘 보내기 위해 애썼던 나 자신에게, 오늘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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