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95

거울을 발견한 시인

by 인상파

이상의 〈거울〉


거울을 발견한 시인


이상은 ‘거울’을 ‘발견’한 시인이다. 거울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사물이다. 그러나 흔하게 보아온 것이 어느 날 ‘발견’되기까지는 반드시 어떤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얼굴을 비추는 거울에서 어느 날 문득 낯선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의 일상에 이미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같은 거울을 보았지만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거울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자기를 어긋나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거울이 새로워진 것이 아니라, 거울을 바라보는 의식의 상태가 달라진 순간 비로소 거울은 ‘발견’된다. 그리고 그 발견은 자기를 확인하는 경험이 아니라, 자기가 더 이상 자신 같지 않다는 감각을 불러온다.


그가 들여다본 거울 속은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는 세계가 아니라 현실과는 반대로 작동하는 세계다. 시끌벅적하고 말이 넘쳐나는 현실과 달리,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다. 귀는 있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딱한 귀가 있고, 손은 있지만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가 있다. 소통의 기관은 분명 존재하지만,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시는 ‘나’가 ‘나’ 같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나’ 같지 않을 때 비로소 느끼고 경험하게 되는 순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이 낯설어질 때가 있다. 도대체 자신이 자신 같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 이상의 〈거울〉에서는 그 계기가 아마도 ‘거울’을 마주한 때였을 것이다. 거울은 자신을 확인시켜 주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 사이의 어긋남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그런데 거울은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 못하게 한다. 보이지만 닿을 수 없고, 인식되지만 확인될 수는 없다. 만남처럼 보이지만 실은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는 구조다. 더 인상적인 것은 화자가 거울이 없어서 자신을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을 오히려 우려한다는 점이다. 이미 한 번 거울을 통해 ‘나’를 만나버렸기 때문에, 지금 거울이 없어졌다고 해서 거울 속의 그 존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번 생겨난 자아의 균열은 도구가 사라져도 의식 속에 남는다.


이제 현실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완전히 분리된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나’는 ‘외로된 사업에 골몰’한다. 이 말은 외로움을 감정으로 겪는 단계를 넘어, 고립을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는 더 이상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혼자서 해야만 하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존재로 남는다.


이상의 시는 어렵다. 그리고 그 시를 해석하는 말들은 종종 시보다 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말로 다 붙잡을 수 없는 상태를 시가 먼저 건져 올렸기 때문이다. 이상의 시는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이해에 실패하는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시를 읽고 찜찜함이나 불편함이 남았다면, 그것은 독해의 실패가 아니라 시가 정확히 도달한 지점일 것이다. 이상은 시가 본래 어렵고, 쉽게 이해되지 않으며,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가 쓴 언어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 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오감도>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의미를 따라가려는 독자를 단번에 밀쳐낸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고,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이 시 앞에서 독자는 이해하려는 사람과 이해를 포기한 사람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 간극 자체가 이상이 만들어 놓은 시의 자리다.


그에 비하면 〈거울〉은 상대적으로 평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거울, 나, 닮음, 어긋남 같은 개념은 일상의 언어로도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은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뜻이다. 〈거울〉에서도 현실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반대이지만 참 닮아있고, 그래서 더 불편하다. 거울 속의 ‘나’는 근심의 존재이고 어딘가 아픈 존재처럼 보이지만, 화자는 그를 근심할 수도 진찰할 수도 없다. 이상은 거울을 보는 평범한 행위 속에서 자아가 둘로 갈라지는 지점까지 밀어붙인다. 그 분열은 보편적 체험이라기보다 아주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만이 도달하는 지점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이상은 시가 어렵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은 시인이고, 오히려 시는 원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을 가장 노골적으로 밀어붙인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읽는 이를 배려하지 않는다. 대신 시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낯선 지점에 언어를 그대로 세워 둔다. 그래서 이상을 읽는 일은 공감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에 가깝다. 그 감각에 닿지 못하면 시 이해는 쉽지 않다. 이상은 그 불친절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시에서도 이상을 놓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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