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환의 인간사 그리워
한하운의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人寰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피ㄹ 닐니리.
인환의 인간사 그리워
보리피리는 어릴 적 보리밭을 지나가다 뜻없이 보릿줄기를 꺾어 불었던 기억에서 시작된다. 청명하기도 했지만 시원하지는 않았고, 소리는 자주 막혔다. 저음으로 가라앉은 그 소리는 놀이였지만, 오래 붙들 이유는 없는 소리였다. 여럿이 불기보다는 혼자 걷다 맥없이 꺾어 불던 것, 불다가 숨이 차거나 뜻대로 소리가 나지 않으면 금방 버리곤 했다. 보리피리는 그저 주변에 흔하게 널린 풀처럼, 갖고 놀다가 쉽게 버리게 되는 그런 거였다. 풀물이 들고 약해서 간직할 수도 없었다. 잠깐 갖고 놀기에 좋은 놀잇감이었다.
그래서 보리피리는 기억 속에서조차 오래 남지 않는다. 놀이였고, 순간이었고, 지나간 일이었다. 그런데 한하운의 시 속에서 그 보리피리는 쉽게 버려진 추억의 사물이 아니다. 인간 세계에서 밀려난 사람이 끝내 놓지 못한 마지막 도구가 된다. 말이 허락되지 않은 자리에서, 인간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선택한 가장 낮고 구슬픈 소리다.
보리피리를 성인이 되어 다시 떠올리게 된다면 대개 유년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하운의 <보리피리>에서 이 피리는 더 이상 추억의 매개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환의 인간사가 그리워서 불게 되는 이유다. 피리를 불며 그는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세상을 떠올린다. 사람들 속에 섞여 살던 시간, 인환의 인간사 안에 있었던 삶에 대한 그리움이다. 동시에 그 피리 소리에는 병을 얻어 세상에서 밀려나 떠돌아야 했던 고통과 서러움으로 얼룩진 세월이 함께 스며 있다. 보리피리는 그 두 시간을 잇는 유일한 매개다. 돌아갈 수 없는 세계와 돌아오지 않는 시간 사이에서. 그래서 그의 피리는 추억을 불러내는 소리가 아니라, 상실과 방랑을 함께 견디는 소리로 들린다.
인환의 인간사. 보통 사람에게는 지겹고 지치기도 하는 그 세계가, 이 시의 화자에게는 병을 얻은 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계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는 일상,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부대끼며 때로는 벗어나고 싶어지는 그 삶이, 그에게서는 너무 이르게 박탈되었다. 문둥병이라는 천형을 선고받은 이후, 그는 병든 몸보다 먼저 인간 세계로부터 격리되었다. 그래서 그의 그리움은 지나간 시간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애초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인간적 삶을 향한 갈망과 그리움으로까지 향한다.
봄 언덕과 고향, 꽃 피는 청산과 어린 때를 그리워하며 부는 피리 소리는 자연을 향한 노래처럼 보이지만, 그 자연은 언제나 사람 냄새가 스며 있던 풍경이다. 보리피리를 부는 행위는 그 풍경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몸짓이며, 그 소리는 말이 허락되지 않은 자리에서 겨우 남은 가장 낮은 발화다. 울음도 아니고, 노래도 아닌, 막히는 걸 알면서도 불 수밖에 없는 소리.
사람에 지쳐 이 부대낌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바로 그런 세속에서 격리되어 한때 자신이 누렸던 삶을 박탈당했다. 병든 것도 서러운데 세상과 절연해야 했던 사람들. 그들을 생각하면, 특히 이 보리피리가 떠오른다.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인간사가, 누군가에게는 끝내 돌아갈 수 없는 세계로 남는다는 슬픈 진실 때문이다.
한하운의 보리피리는 한가하게 부는 소리가 아니다. 세상을 등지고 싶어서 부는 피리가 아니라, 세상 쪽으로 마지막까지 귀를 기울이며 부는 소리다. 맑은 듯하나 막힘이 있어 시원하지 않고, 오래 불 수 없어 더 애잔한 저음의 울림. 그 소리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이상 말이 될 수 없을 때 선택된 방식이다.
그래서 이제 보리밭을 지나며 무심히 꺾어 불던 그 소리를 다시는 가볍게 떠올릴 수 없다. 불다 말고 버려졌던 그 피리가, 누군가에게는 끝내 놓을 수 없었던 삶의 마지막 도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