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14분
새벽 4시 14분
어머니가 기침을 한다. 기침 사이로 가래 끓는 소리가 섞이고, 잠긴 목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끝내 시원해지지 않는다. 몸을 돌려 기저귀를 확인한다. 겉기저귀까지 스며든 소변 탓에 기저귀를 가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몸을 좌우로 굴려가며 젖은 기저귀를 빼고 새 기저귀를 밀어 넣는다. 젖은 물티슈로 아랫도리를 닦아내자, 찬기에 잠에서 덜 깬 어머니가 놀라듯 몸을 움찔한다.
새벽 2시 50분이다.
젖은 기저귀를 담을 봉지를 찾으려고 부엌 서랍을 열고, 어지럽혀진 침대 위를 정리한 뒤 어머니 어깨까지 이불을 덮어드린다. 다시 자리에 눕는다.
이 밤은 쉽게 끝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 어머니와의 동거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헤아리는 쪽으로 흐른다. 오래 남지는 않은 것 같다. 허리 골절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병실에 계실 때와 달리 기력도 정신도 바닥을 치고 있다. 병원에 계실 때부터 틀니를 넣었다 뺐다 하는 일을 잊어버리고 내 손에 의지했는데, 이제는 입안을 헹궈 뱉으라는 말과 물을 삼키라는 말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식사 후 화장실까지 가는 일도 위태로워 식탁에서 틀니를 빼드린다. 저녁에는 삼키라는 말에도 계속 뱉어낸다. 어머니의 옷은 물론이고 식탁까지 물바다가 된다. 오후에는 언니 둘이 어머니를 보러 왔다. 마침 남동생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에도 아무 반응이 없다. 눈을 감은 채, 그 소리와 얼굴을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 어머니의 관심을 붙잡던 세계가 그렇게 하나씩 어둠 속으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근 한 달 가까운 병원 생활 끝에 어머니의 파마머리는 겨울 풀숲처럼 생기를 잃고 수더분해졌다. 언니 둘과 함께 휠체어를 밀고 아파트 상가의 미용실을 찾았다. 짧게 자른 머리는 잘 깎인 무덤 위의 잔디 같다. 바쁜 미용실 원장을 대신해 어머니 머리를 감기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어 담는다. 빗자루 끝에서 메마른 풀이 쓸리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어머니가 다시 가래 기침을 한다. 가래가 목구멍에서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빨대 물병을 가져와 어머니 입술에 대고 물을 드시라고 어깨를 흔든다. 몇 모금의 물이 천천히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이 어머니와 나는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힘들다는 이유로 이 집에서 보내버리기에는 너무 가엾고, 저 고목 같은 어머니를 붙잡고 혼자 씨름하기에는 이미 내 체력도 한계에 와 있다. 어머니를 보내고, 그 ‘보내버린 마음’을 끝내 보내지 못한 채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까. 아니면 이렇게 곁에 두고 돌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를 미워하게 되는 쪽이 더 잔인한 선택일까.
어머니다. 도시에 나와 삶이 고달플 때마다 눈물지으며 불러 보던,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던 어머니가 지금은 나를 불면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고 있다. 다 큰 자식이 아직도 정서적으로 어머니에게서 분리되지 못한 채, 고달픈 애착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나는 어머니를 보내는 일과 어머니를 잃지 않으려는 마음 사이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해치며 스스로를 잃게 될까 봐, 그 사실이 가장 두렵다.
새벽 4시 14분.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