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03

봄을 붙잡지 못한 채

by 인상파

김영랑의 「오월」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 이랑 만 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러울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봄을 붙잡지 못한 채


김영랑은 흔히 ‘모란’의 시인으로 불린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처음 대면했을 때, 나는 모란을 목련꽃으로 이해했다. 크고 희고 단정한 꽃, 가지 끝에 외따로 피어 봄을 알리는 목련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야 그것이 목련이 아니라 모란이라는 사실을 알고,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모란은 ‘나무의 연꽃’이라 불리는 목련보다 어딘지 처지고 모자란 구석이 있어 보였다. 화려하긴 하지만 짙은 팥색과 빨간색은 귀신을 쫓는 색으로 여겨질 만큼 묵직했고, 꽃송이가 커서 아래로 쏠린 듯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꽃잎은 겹겹이라 단정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수많은 봄꽃 가운데에서 모란의 자태가 과연 봄의 절정에 어울리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물론 설총의 「화왕계」에서는 모란을 꽃 중의 왕이라 일컬었다. 하지만 한때 약용식물로 시골 밭에서도 길렀던 꽃이라 자주 봐온 탓인지 어린 내게는 흔하디 흔한 꽃으로 여겨져 그 귀함이나 아름다움이 그리 특별할 게 없었다. 무엇보다 봄은 산뜻하고 경쾌하며, 개화와 초록이 시작되는 계절인데, 모란은 너무 늦고 너무 무르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영랑의 모란은 꽃이 피기도 전에 이미 소멸을 예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탓인지 김영랑의 「오월」 또한 봄의 생동감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살랑거리고 일렁이는 봄기운 속에서, 이미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무엇을 감지하게 된다. 들과 마을의 경계는 흐려지고, 보리밭에는 바람과 햇빛이 넘쳐나지만, 그 풍경은 마음을 붙들어 주기보다 오히려 스쳐 지나간다. 생명은 한껏 차올라 있는데, 그 충만함은 오래 머물지 않을 것처럼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 시에서 화자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봄의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마을 골목 어귀에 서 있는 듯하고, 다시 보리밭으로 시선이 옮겨 간다. 햇빛은 보리밭 위로 쏟아지고, 바람은 그 사이를 가르며 지나가 보리를 일렁이게 한다.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몸을 숨기지 못한 채 허리통을 드러내고, 그 모습은 싱싱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하다. 생명은 분명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그 움직임은 마음을 가볍게 들어올리기보다 오히려 어지럽힌다.


이 봄은 정돈되지 않는다. 들과 마을의 경계는 흐려지고, 길의 색은 뒤섞이며, 바람과 빛은 보리 이랑을 스치고 지나가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짝을 부르는 꾀꼬리의 암컷과 수컷은 서로를 향해 쫓기고 쫓는다. 봄의 자연은 소란스럽고 생명으로 가득 차 보이지만, 화자는 그 분주한 흐름 속에 쉽게 섞이지 못한 채 한 발 물러서 있다. 봄의 생기는 넘치지만, 그것은 화자를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오월」의 봄은 가볍게 기뻐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니다. 모란이 피기도 전에 질 것을 떠올리며 섭섭해하던 시인의 시선은, 이 시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봄은 한창이지만 이미 흩어질 채비를 하고 있고, 화자는 그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 채 한 발 늦게 서 있다. 얇은 단장을 하고 들뜬 산봉우리를 향해 “오늘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하고 묻는 목소리에는, 봄을 붙잡고 싶은 마음보다 이미 떠나고 있음을 알아차린 사람의 쓸쓸함이 배어 있다.


이렇게 읽고 나면, 「오월」은 생명의 절정을 노래하는 시라기보다 그 절정이 지나가고 있음을 미리 감지하는 시처럼 느껴진다. 김영랑에게 봄은 늘 도착과 함께 이별을 품고 오는 계절이었고, 그래서 그의 봄 시는 한 겹의 슬픔과 상실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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