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04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

by 인상파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


曠野에 달니는 人生아

너의 가는 곳 그어대냐

쓸슬한 世上-險惡한 苦海에

너는 무엇을 차즈러 가느냐


눈물로된 어世上아

나죽으면 고만잀가

幸福찻는 人生들아

너찻는 것 서름


웃는저꽃과 우는저새들이

그運命이 모도다 갓흐니

生에 熱中한 可憐한 人生아

너는 칼우에 춤추는者로다


눈물로된 어世上아

나죽으면 고만잀가

幸福찻는 人生들아

너찻는 것 서름


虛榮에 바져 날ᄯㅟ는人生아

너 속혓음을 네가아느냐

世上의것은 너의게 虛無니

너죽은후에 모도다업도다


눈물로된 어世上아

나죽으면 고만잀가

幸福찻는 人生들아

너찻는 것 서름


현대어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엔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


〈사의 찬미〉는 내 인생에 어느 날 예고 없이 들어온 노래다. 그 유통 경로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내게 심대한 영향을 끼친 노래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노래는 가사와 곡, 그리고 노래한 사람의 삶이 분리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쓰고 직접 노래한 윤심덕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로 불리며, 1920년대 근대 예술계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동경음악학교를 졸업한 전문 성악가였고, 귀국 후에는 음악 활동과 교편 생활을 병행하며 신극운동에도 참여했다. 그의 목소리는 당대에는 낯설었고, 그만큼 강렬했다.


〈사의 찬미〉는 루마니아 작곡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왈츠곡 ‘도나우강의 잔물결’에 윤심덕이 한국어 가사를 붙여 1926년 일본에서 취입한 번안곡이다. 이 노래는 당초 예정에 없던 곡이었지만, 취입 이후 가장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되었다.


윤심덕의 삶과 죽음은 종종 동시대 극작가 김우진의 이름과 함께 거론돼 왔다. 두 사람의 동반 죽음은 〈사의 찬미〉를 하나의 비극적 서사로 굳혀 놓았고, 그로 인해 이 노래는 오랫동안 ‘죽음을 찬미하는 노래’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노래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를 그들의 죽음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이 노래는 만들어질 때부터 이미, 삶을 향한 가장 냉정한 질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찬양하거나 권유하지 않고, 삶이 과연 감당할 만한가를 묻는다. 삶에 열중한 인생조차 위험하다고 말하고 행복을 ‘찾으려는 태도’ 자체를 의심하며 이렇게 위태롭고 허무한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어린 시절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이 노래를 들었다. 이해는 늘 어른들의 몫이었고, 아이에게 허락된 것은 감각뿐이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이 스며들었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라는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풍경이 되었고, ‘행복 찾는 인생들아’라는 부름은 훈계가 아니라 예감처럼 들렸다.


마을의 상여가 나가던 날들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장례는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이틀에 걸쳐 이어지는 의식은, 아이에게 세계가 잠시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이상하게 과잉된 시간이었다. 어제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 봉인되고, 어른들은 울다가 밥을 먹고, 다시 곡을 했다. 슬픔은 하나의 표정을 갖지 않았고, 엄숙함은 뒤죽박죽이었다. 그 모든 장면이 어린 내겐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나는 그 세계 한가운데서 보호받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꽃상여가 지나가는 길을 오래 지켜보았다. 상여꽃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기는 모습을, 왜인지 눈을 떼지 못하고 보았다. 장식으로 만들어진 꽃이 현실의 거친 표면에 닿아 훼손되는 순간, 알았다. 아름다움은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은 누구도 굳이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슬픔보다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이전과는 다른 세계로 빨려든 기분이었다.


그 무렵 들었던 노래가 〈사의 찬미〉였다. 노래 제목의 뜻이 뭔지도 몰랐다. 다만 그 노래는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던 질문을 대신 던져주었다. ‘나 죽으면 그만일까?’라는 물음은 아이에게 위험한 말이었지만,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정직했다. 어른들은 늘 “괜찮다.”거나 “다 그런 거다.”라고 말했지만, 노래는 묻고 있었다. 정말 그럴까, 하고. 그 노래를 듣고 펑펑 울었다. 외딴 섬 한복판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고, 아무도 묻지 않던 질문을 누군가 대신 말해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이유 없는 울적함이 자주 찾아왔다. 살아서 뭐하나? 하는 질문이 막다른 골목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는 일이, 나이를 먹는 일이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았고, 무엇을 해도 마음 한구석은 늘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를 비어 있는 껍데기라고 여겼다. 마음을 나누어도, 무언가를 이뤄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 그것은 결핍이라기보다 오래된 감각이었다. 너무 이르게 세계의 이면을 보아버린 사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겨둔 거리 같은 것.


돌이켜보면 그 빈자리는 채우라고 남겨진 공간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비어 있음으로 세계를 감각하게 된 자리였다. 그 자리가 있었기에 남들과 쉽게 동일시하지 않았고, 성급히 의미를 단정하지 않았다. 그 빈 곳 때문에 쓸쓸하고 허전했지만, 그 덕분에 무감각해지지 않았다.


〈사의 찬미〉는 내게 죽음을 찬미하는 노래가 아니었다. 삶이 이미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숨기지 않는 노래였다. 열심히 사는 것이 언제든 ‘칼 위의 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였던 나에게 먼저 알려줬다. 나는 그 노래에 매혹되었고, 그 매혹은 오래 남아 나의 정서가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막다른 골목은 삶의 끝이 아니라 입구였다.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너무 일찍 통과해 버린 사람만이 서게 되는 자리. 그 자리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빈 곳을 지닌 채로,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사람으로. 어쩌면 그 빈자리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일 것이다. 끝내 무감해지지 않기 위해 남겨둔 마지막 공간.


알 수는 없었지만 매혹적이었던 그 노래의 가삿말이 내게 건넨 것은 삶은 열심히 산다고 해서 안전해지지 않는다는 것, 슬픔에는 정답도 올바른 태도도 없다는 것, 의미는 언제든 부서질 수 있고 그래도 세계는 계속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네가 틀린 게 아니다라는 무언의 승인으로, 그렇게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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