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을 기다리는 마음을 거두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여흰 서름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하로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고
뻐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말아
삼백예순날 한양 섭섭해 우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절정을 기다리는 마음을 거두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소멸을 미학으로 사유하려다, 오히려 그에 사로잡힌 마음을 드러내는 시다. 피어나는 순간보다 지는 순간을 먼저 알아보는 감각, 찬란함 속에 이미 스며 있는 슬픔을 포착하는 태도는 시인의 고결한 통찰처럼 보인다. 절정을 미리 애도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화자를 한동안은 존경에 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 시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마음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그 화자가 소멸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소멸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꽃이 피기까지를 기다리지만, 그 기다림은 충만한 희망이 아니라 이미 예비된 상실에 가깝다. 모란이 피어도 그는 환희에 머물지 않는다. 곧 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는 순간조차 온전히 현재가 되지 못하고, 이미 미래의 슬픔으로 기운다.
“삼백 예순날 한양 섭섭해”라는 구절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 것도 그 때문이다. 며칠의 절정을 위해 일 년을 통째로 울며 기다리는 삶. 절정의 순간만을 믿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예비와 결핍으로 살아가는 태도. 그에게 삶은 언제나 이미 지나간 며칠을 중심으로 회전할 것이다. 지금의 온기보다 곧 식을 기억을 더 소중히 여기고, 오늘의 평온보다 언젠가 올 혹은 이미 지나간 찬란을 붙들며 현재를 비워 두는 삶으로.
그에게 하루는 아직 오지 않은 꽃을 위해 미뤄지고, 이미 진 꽃을 애도하느라 오늘이라는 시간은 도착하지 못한다. 행복은 도착하기도 전에 상실의 언어로 번역되고, 기쁨은 오래 머물 자리를 얻지 못한다. 그는 사랑마저 절정으로만 믿을 것이고, 사랑이 일상이 되는 순간, 이미 끝났다고 느끼지 않을까.
이 시의 슬픔은 미학이 아니라 생활 방식이다. 모란이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지만, 삼백예순날을 하냥 섭섭해하는 것은 인간의 집착이다. 그는 언젠가 올 절정을 위해 현재를 유예하고, 이미 지나간 절정을 위해 현재를 비워 둔다. 그래서 그의 봄은 오지 않거나, 와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처음에는 찬란해서 더 슬픈 것으로 읽히던 시가, 이제는 찬란해야만 살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의 비애로 다가온다.
문득 ‘도’라는 말이 떠오른다. 꽃이 필 때는 꽃 핀 그 자체를 보고, 꽃이 지면 지는 그 순간을 보면 되는 것. 이 말은 이 시를 향한 조용한 반문처럼 느껴진다. 도란 절정을 미리 붙드는 태도도 아니고, 상실을 앞당겨 사는 방식도 아닐 것이다. 도는 오히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지 않을까. 피어 있음에는 피어 있음으로 머물고, 짐에는 짐으로 머무는 것. 환희를 환희로, 슬픔을 슬픔으로 지나보내는 일.
그렇게 보니, 이 시의 화자는 어느 순간에도 도달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 피기 전에는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고, 피어서는 이미 질 것을 생각하며, 지고 나서는 지나간 피어남을 붙잡는다. 그는 늘 한 박자 어긋난 자리에 서 있다. 삶은 절정과 절정 사이의 공백으로만 남는다.
그래서 이제는 이 시를 예전처럼 동경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이런 유예된 삶을 살아도 괜찮은가, 하고. 찬란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는 마음, 절정이 아니면 모두 허기라고 여기는 태도는 결국 삶에 전념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은 소멸의 미학이 아니라, 생활을 유예하는 비극에 가깝다.
아마도 이 변화는 시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는 그를 이해하려 애썼고, 지금은 그를 넘어가고 싶어졌다. 꽃은 피면 피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충분하다는 쪽으로. 절정을 중심에 두지 않고도 하루를 살 수 있다는 쪽으로.
그 지점에서 나는 이 시와 조금 멀어졌고, 대신 삶 쪽으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거리감이야말로, 지금의 나에게 가장 솔직한 독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