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 수 없는 강 하나
김영랑의 <내 마음을 아실 이>
내마음을 아실 이
내혼자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것이면
내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밤 고히맺는 이슬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여드리지
아! 그립다
내혼자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혼자 마음은
건널 수 없는 강 하나
자기 마음은 자기밖에 알 수 없다는 쓸쓸함을 노래한 시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 존재로 홀로 남겨졌다고 느낀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때에 김영랑의 이 시는 조용한 위로가 되어 다가온다. 쓸쓸하고 외로워서만이 아니라, 가장 이해받아야 할 자리에서, 가장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사람에게 가장 뼈아픈 말을 듣게 될 때, 이 시가 살며시 고개를 든다. 그러면 저 1930년대의 시인의 마음 언저리에 문득 가 닿는 듯하고, 이 고독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동질감이 살짝 내려앉는다.
그러나 끝내, ‘내혼자마음’은 언제나 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시적 화자처럼 “그래도 어데나 계실것이면” 하고 누군가를 가정해 보지만, 과연 나는 그에게 화자처럼 마음의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 이슬 같은 보람까지를 기꺼이 내보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도 그 질문 앞에서 마음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김영랑의 화자가 끝내 “내여드리지” 않는 이유가 세상에 알아줄 이가 없어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알아줄 이가 있다 해도, 내보일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마음을 민낯으로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 그립다고 말하면서도, 이 시에서 ‘내혼자마음’이 무엇인지는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그 마음은 철저히 감춰진 채로 남아있다. 어쩌면 그것은 숨기려는 의도의 개입이 아니라, 마음의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 이슬 같은 보배가 지닌 구체성 자체가 말로는, 혹은 타인 앞에서는 도무지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내혼자마음’은 비밀이어서 숨긴 것이 아니라, 너무 구체적이고 너무 사적인 탓에 언어와 관계의 바깥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시에서 끝내 밝혀지지 않는 마음은, 그 감춰짐 자체로 오히려 마음이 얼마나 진실했는지를 증명하는 방식이 된다.
마지막 연에서는 사랑을 말한다. 사랑은 타기도 하지만,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라며 다시 ‘내혼자마음’으로 닫힌다. 그렇다면 여기서 ‘희미론 마음’은 곧 ‘내혼자 마음’일까. 사랑은 하면서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혼자 마음만은 사랑하는 이와도 나눌 수 없다는 뜻일까.
‘희미론 마음’은 ‘내혼자 마음’과 겹쳐진다. 사랑과 동시에 존재하지만, 끝내 사랑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마음이다. 사랑 속에서도 끝내 관계가 되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와조차 나눌 수 없는, 그러나 가장 내밀한 ‘내혼자 마음’. 그래서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네가 옆에 있어도 나는 네가 그립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사람 사이에는 끝내 건널 수 없는 강 하나가 놓여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