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흐르는 마음의 강물
김영랑의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내마음의 어딘 듯 한편의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도쳐오르는 아침날빛이 뻔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있는곳
내마음의 어딘 듯 한편의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끝없이 흐르는 마음의 강물
이 시를 읽고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생각한다. 시에서처럼 가슴엔 듯, 눈엔 듯, 핏줄엔 듯, 그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어릴 적에는 마음이란 게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가슴이 아프면 마음이 거기 있는 줄 알았고, 눈물이 나면 눈에 있는 줄 알았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또렷할 때는, 마음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김영랑은 시에서 마음을 먼저 불러낸다.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의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른다. 감정이 먼저 요동치고 마음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기 있던 마음 안에서 강물이 쉼 없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그 강물 위에 아침날 빛이 닿자 뻔질한 은결이 돋는다. 빛은 흐름을 만들지 않고, 다만 흐르고 있던 것을 잠시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마음은 충분히 드러난 것처럼 보이는데, 시는 뜻밖에도 다시 묻는다. 마음이 숨어 있는 곳은 어디인가.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왜 시인은 굳이 마음의 위치를 다시 더듬는 걸까.
아마도 마음이 드러났기 때문에, 오히려 숨어 있는 자리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강물처럼 흐르되 넘치지 않기 위해서, 은결처럼 반짝이되 눈부시지 않기 위해서. 이 마음은 감정으로도, 인식으로도, 생명 그 자체로도 환원되지 않기에, 어느 한 곳에 고정될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은 가슴에도 있는 듯하고, 눈에도 있는 듯하고, 핏줄을 따라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끝내는 ‘도란도란’ 숨어 있는 상태로 남는다.
이 시에서 마음은 소유되거나 설명되는 대상이 아니다. 붙잡히지 않기 때문에 계속 흐를 수 있고, 숨어 있기 때문에 오래 살아 있다. 그래서 읽고 나면 마음의 형상은 남지 않지만, 대신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 감각만 남는다. 아마 그것이 이 시가 붙잡고 싶었던 마음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시 제목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이다. 지금까지 더듬어온 마음은 다른 무엇도 아닌, 동백잎에서 빛나는 마음인 것이다. 동백잎이라면 잎이 두툼하고 윤기가 흐른다. 바람이 불어도 요란하지 않고, 빛이 닿을 때에는 윤기가 은결을 돋은 것처럼 보인다. 동백잎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강물이 흐르는 마음일 것이고 바깥으로는 동백잎에 도는 은결일 것이다.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은 아니다. 동백잎의 표면에 맺히는 빛은 과장되지 않고, 번쩍이지 않으며, 그저 있던 결을 잠시 보이게 할 뿐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 마음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담긴 마음이 아니다. 전면으로 나서지 않고, 어떤 두께를 가진 표면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마음이 곧장 얼굴이 되지 않고, 동백잎이라는 질감을 하나 사이에 두고 세상과 만난다. 그 덕분에 마음은 상처 입지 않고, 강물은 넘치지 않으며, 빛은 은결로만 남는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숨어 있는 마음’을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마음이란 형체가 없어서 숨은 게 아니라, 동백잎처럼 버티기 위해 숨어 있다고 할 것이다. 가슴에도 있는 듯하고, 눈에도 있는 듯하고,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것 같지만, 어느 한 자리에 고정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정되는 순간, 마음은 흐름을 멈추고, 그러면 마음으로서 살아 있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마음에 흐르는 강물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강물의 흐름이야말로 마음이 썩지 않게 하는 원천일 테니 말이다. 이 시의 첫구와 결구에 놓인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 강물이 흐르네’의 상관은, 마음의 유동성에 대한 강조이다. 이 마음은 하나의 감정이나 의미로 수렴되지 않고, 붙잡는 순간 스스로를 잃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은 한곳에 머물지 않으며, 끝없이 흐르는 상태로만 유지된다. 김영랑이 처음과 끝을 같은 문장으로 감싼 것은, 마음이 결론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본질이 도달이 아니라 지속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