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11

낙인 찍힌 몸의 슬픔

by 인상파

서정주의 <화사花蛇>


麝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뚱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석유 먹은 듯……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설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 스며라, 배암!



낙인 찍힌 몸의 슬픔


서정주의 〈화사〉는 오래도록 불편한 시였다. 뱀, 입술, 피, 향기, 스며듦 같은 이미지들은 이 시를 관능의 언어로 밀어붙였고, 그 결과 나는 이 시를 어딘가 과잉되고 불결한 시로 멀리해 두었다. 무엇보다 나는 뱀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미끄럽고, 소리 없고, 방향을 알 수 없는 몸.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존재다. 그래서 이 시 역시 오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런데 이 시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뱀을 둘러싼 언어들 —“징그러운 몸뚱아리”,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였던 혓바닥”, “물어뜯어라”, “저놈의 대가리” —이 의외로 잔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돌팔매를 쏘며 뱀의 뒤를 따르는 장면을 읽다 보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길가 풀숲에서 뱀이 나타나면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돌을 던졌고, 그러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그 뒤를 쫓았다. 그건 증오만은 아니었다. 두려움과 끌림이 섞인 몸의 반응이었다.


〈화사〉는 독자를 먼저 사향 박하(麝香 薄荷)길이라는 감각의 통로로 데려간다. 사향은 사향노루의 향, 짙고 뜨거운 동물적 냄새이고, 박하는 민트, 차갑고 맑아 의식을 또렷하게 만드는 향이다. 사향 박하길은 이 두 냄새가 섞여 있는 길, 곧 뜨거운 욕망과 차가운 이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 길은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며, 이성도 아니고 본능도 아닌 경계의 자리다. 몸과 냄새와 숨결이 먼저 반응하는 세계, 욕망과 낙인이 동시에 태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 화사(花蛇)가 있다. 꽃뱀, 화사는 아름답고, 징그럽고, 위험하며, 무엇보다 과도한 생명을 품은 존재다. 동경과 혐오가 한 몸에 얹힌 채, 그는 이 경계의 길 위에 놓여 있다. 꽃처럼 시선을 끌고, 뱀처럼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존재. 그래서 사람들은 화사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돌을 든다.


그러나 그 돌팔매는 단순한 물리적 공격이 아니다. 두려움과 함께 섞여 있는 끌림, 위험한 생명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반응이다. “돌팔매를 쏘면서 뒤를 따르는” 행위는 미워서 쫓는 것이 아니라 눈을 떼지 못해서 따라가는 몸의 움직임에 가깝다.


화자는 그 이유를 ‘이브를 꼬인 죄’ 같은 신화로 돌리지 않는다. 뱀이 쫓기는 것은 도덕적 타락 때문이 아니라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 때문이다. 위태로울 만큼 열렬한 목숨, 너무 많은 생명력을 품은 몸. 사람들은 그 숨결에 끌리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견디지 못해 돌을 든다.


그래서 화사는 유혹자가 아니라 이미 희생양의 자리에 놓인 존재다.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그토록 징그러운 몸을 가졌느냐는 물음은, 그 몸이 죄가 아니라 운명임을 말해 준다. 아름답기 때문에 더 빨리 낙인찍히고, 생명력이 가득하기에 더 위험하다고 불리는 몸인 것이다.


그래서 “푸른 하늘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하며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말은 뱀의 목소리도, 순네의 목소리도 아니다. 그것은 희생양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공동체의 언어다. “너는 그런 존재이니, 그렇게 행동하라”는 잔인한 명령의 말투다.


이어지는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 말 속에서 뱀은 더 이상 생명이 아니라 쫓아내야 할 표적,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뀐다. 이 언어가 등장하는 순간, 돌팔매는 놀이가 아니라 사냥이 된다.


이 시는 아름다움과 욕망이 어떻게 혐오와 폭력으로 전환되는지,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하나의 몸을 골라 죄를 씌우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돌을 던지며 뱀을 쫓지만, 사실은 그가 품은 넘쳐나는 생명력과 강렬한 아름다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뒤따르는 것은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과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이라는 두 이미지가 모두 ‘고운 입술’로 수렴된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여왕과 시골의 젊은 색시, 전혀 다른 두 여자가 같은 자리로 불려 나온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지위도, 성격도, 죄도 아니다. 몸의 입술이다.


입술은 이 시에서 욕망이 드러나는 경계다. 말과 숨과 입맞춤과 물어뜯음이 오가는 자리, 안과 밖이 만나는 얇은 문이다. 입술은 아름다움의 표식이면서 동시에 위험의 표식이 된다. 서정주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낙인찍히는지를 보여준다.


살아 있는 입술, 반응하는 입술,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입술은 곧 ‘화사’의 자리로 끌려나온다. “스며라, 배암!”이라는 말은 그 입술에서 나온다. 유혹의 속삭임처럼 들리지만, 실은 욕망 속으로 들어오라는 말과 죄의 자리를 맡으라는 말이 한꺼번에 겹쳐 있는 호출이다.


그래서 〈화사〉는 관능의 시가 아니라 낙인 찍힌 몸들의 시다. 꽃뱀은 유혹의 상징이 아니라 공동체가 불안과 욕망을 한데 모아 한 몸에 얹어 버린 희생양이다. 우리는 돌을 던지며 그를 쫓지만, 사실은 그가 품은 생명과 열기에 눈을 떼지 못해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화사’는 그렇게 아름다움과 저주, 끌림과 배척이 동시에 작동하는 인간의 가장 깊은 모순을 한 몸으로 보여 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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