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길이 될 때
김기림의 「길」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기다림이 길이 될 때
김기림은 대표적인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으로, 대개 「바다와 나비」의 작가로 기억된다. 차단된 서정, 객관화된 감각의 언어에 익숙한 독자라면 「길」이 품고 있는 기억에 젖은 정서와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의 세계가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이 시의 서정은 감정에 기울지 않는다. 울음을 앞세우지 않고, 비탄을 과잉으로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그 점에서 「길」은 김기림이 추구한 모더니즘의 태도와도 결코 멀지 않다. 「길」은 한 번 거쳐온 자리라는 느낌을 준다. 사별과 상실,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않은 이야기를 실제로 살아본 사람에게 이 시는 작품이 아니라 기억의 지층처럼 다가온다.
이 시가 특별한 이유는 상실을 설명하지도, 위로하지도,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기 때문이다. 상여는 지나가고, 계집애는 떠나가고, 강가는 남아 있고, 이야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버드나무 아래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면 어둠이 와서 얼룩을 씻어줄 뿐이다. 누군가를 여읜 사람이 아니라면 끝까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리듬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읽는 일은 문학을 읽는다기보다 이미 지나간 한 시절을 다시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시의 장면과 겹치는 자기 인생의 한 장면을 소환해 그 시간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이미 지나왔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그런데도 계속 남아 있는 자리로.
언덕길에서 어머니와 첫사랑을 잃고, 푸른 하늘빛에 이끌려 강가로 내려갔다가, 그 오랜 시간을 잃어버린 존재들을 그리며 서성이다 노을의 자줏빛에 젖어 돌아오는 경험이 그 강가의 길을 만들어낸다. 그 길은 단지 물리적인 길이 아니라, 화자가 상실을 건너오며 밟아온 시간의 흔적이며,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내 돌아보게 되는 삶의 경로다.
그리고 몇 번의 계절이 지나 그 강가를 드나들던 새들마저 떠난 뒤, 쓸쓸하고 황량한 강변의삭막한 모래 둔덕에 어두운 마음만 남았을 때, 몸서리치며 감기를 앓았다는 그 고백 앞에서 독자는 가슴이 먹먹해져 그 서러운 인생 이야기에 그만 마음을 맡기고 만다.
마지막 연은 사람을 한 번 더 울린다. 마을의 당산나무쯤으로 여겨질 만큼 오래되고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강가를 거닐며 수없이 되새겼을 돌아오지 않은 어머니와 계집애와 이야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얼마나 처연한가.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꼭 돌아올 것만 같아서 기다리게 된다는 그 말은, 습관처럼 몸에 밴 기다림, 포기조차 할 수 없게 된 마음의 자세, 이미 상실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상실을 끝내 놓아주지 못한 사람의 태도다.
결국 기다림은 기다림으로 끝나고, 다만 어둠이 기어 나와 뺨에 남은 얼룩을 씻어줄 뿐이다. 눈물도 아니고 눈물의 흔적을 씻어준다는 이 장면은 울음이 지나간 뒤에야 도달할 수 있는 자리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 시에서 화자의 상실은 길이 되고, 기다림은 시간이 되며, 어둠은 마침내 감정을 대신해 주는 마지막 손길이 된다.
이처럼 이 시는 김기림을 ‘차가운 모더니스트’로 교육받아 온 독자에게 서정적 형식을 취한 모더니즘적 상실 인식의 세계를 드러낸다. 감정을 앞세워 세계와 화해하려는 서정이 아니라, 상실을 끝까지 통과한 뒤에야 도달하는 단념에 가까운 인식. 기억은 회상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음에 대한 확인이고, 기다림은 희망이 아니라 삶의 자세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