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글 44

내 혼자 마음을 읽는 이유

by 인상파

내 혼자 마음을 읽는 이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가르쳤던 아이들이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부모는 아니지만, 거의 5년 가까이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을 마주하며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을 함께 지나왔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에게 나에 대한 첫인상을 적어 보라고 했더니, 머리 긴 생머리의 젊은 여자일 줄 알았는데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여서 실망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적어 놓았던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들이 이제 고등학생이 된다.


오늘은 수업 시간에 독서의 의의를 다룬 비문학 지문을 읽고 있었다. 글의 선지에는 독서는 현실 회피가 아니라는 문장이 정답처럼 놓여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럼 선생님은 책을 왜 읽어요?”


나는 잠깐 망설였다. 교과서적인 답을 적당히 골라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독서의 의의에서 벗어난 선지가, 오히려 내 독서의 이유에 가깝다고 말했다. 사실 그랬다. 나의 독서는 현실 회피에 가깝다. 삶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나는 책을 든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이만한 회피법은 없다. 나는 요즘 중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1920–30년대의 시 속으로 달아나고 있다. 처음에는 학창시절에 감회가 깊었던 시들을 읽어보자고 하는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그 시절의 시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요즘 들어 사람들과의 대화가 점점 힘들어진다. 내 뜻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상대의 뜻도 내 가슴까지 닿지 않는다. 내 마음이 더 이상 내 마음 같지 않아서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여유를 잃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우선 달아나고 본다. 태곳적 같은 그 먼 시대로. 그 시대의 시 속 풍경과 생활, 정서와 분위기에 들어가 앉아있는 게 편하다.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어, 잠시 그 풍경에 취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곳은 안전하다.


김소월, 김영랑, 백석, 이상, 정지용, 한용운, 노천명……

그들의 세계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상실과 슬픔, 고독을 노래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고, 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위험했다. 그래서 감정은 직접 말해지기보다 풍경 속에 숨겨졌고, 고독과 상실은 개인의 언어가 아니라 자연의 언어로 바뀌어야만 했던 시대였다.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지는 상황에서, 감정을 말하면 오해가 쌓이고 설명할수록 더 어긋난다. 그렇게 마음이 갈 곳을 잃을 때, 그들의 시 속에서 그들의 정서와 생활, 분위기에 침묵으로 호흡을 맞추는 일은 어떤 해명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해를 부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세계 안에서는 비교적 안전하게 머물 수 있다. 그러니 현실 회피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끝내 건네지 못하고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온 마음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영랑은 그것을 ‘내 혼자 마음’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는 그 시대의 시 속으로 들어간다.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설명이 오히려 상처가 되는 순간마다 잠시 그들의 정서와 생활, 호흡 속에 몸을 숨긴다.


그러나 그 침묵은 현실을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유예에 가깝다. 그렇게 되돌아온 마음은 이전보다 조금 덜 날이 서 있고, 조금 더 오래 견딜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된다. 김영랑의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하자면, 그 시간은 '내 혼자 마음'을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내 혼자 마음을 다시 들고 나올 수 있게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는 아이가 독서의 이유를 물었을 때, 나는 교과서처럼 말하지 않았다. 대신 현실 회피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 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절반은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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