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20

그 바람이 불기를 기다린 사람

by 인상파

이한직의 <높새가 불면>


높새가 불면

唐紅연도 날으리


향수는 가슴 깊이 품고


짚풀을 삼어

짚세기 신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슬프고 고요한

길손이 되오리


높새가 불면

黃나비도 날으리


생활도 갈등도

그리고 산술도

다아 잊어버리고


白樺를 깎어

墓標를 삼고


동원에 피어오르는

한떨기 아름다운

백합꽃이 되오리


높새가 불면



그 바람이 불기를 기다린 사람


이한직의 〈높새가 불면〉은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끈다.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마음 한 구석을 파고든다. 뭘까. 정서와 삶을 대하는 방식의 어떤 동질감 때문일까. 시상을 따라가다 보면 화자가 추구하는 삶의 어느 지점이 꼭 내가 가고자 했던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연이 날고, 나비가 날고, 길손이 되고, 끝내는 무덤과 백합으로 닿는 장면들에서 인생의 고락이 한꺼번에 겹쳐진다.


처음에는 이 장면들이 다소 파편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시의 첫머리에 놓인 ‘높새’의 뜻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이 시의 맥락은 비로소 잡혔다. 높새는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이다. 매우 건조해서 농작물과 풀잎의 끝을 말려 버리는 바람. 겉으로는 계절이 앞으로 가고 있는데, 생명은 오히려 내부부터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높새는 무엇을 하게 만드는 바람이 아니라,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들을 동시에 드러내는 바람이다. 살아야 할 계절인데도 더 이상 삶을 지탱할 수 없다는 조건이 외부에서 확정되는 순간이다.


이 바람이 불면 당홍연도 날고 황나비도 난다. 늦봄이라면 황나비가 날고 연도 띄울 수 있을 것이다. 당홍연은 붉고 화려한 연, 사람이 만든 인공물이다. 높새가 불면 당홍연도 난다는 말은, 삶을 견딜 만하게 꾸며 주던 것들―취향, 장식, 체면, 계산―조차 그 바람 앞에서는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황나비도 난다는 말은 더 분명하다. 활동을 시작한 연약한 생명조차, 이 계절의 바람 앞에서는 가장 먼저 위태로워진다. 높새가 불면 연이 날고, 나비가 날고, 그 다음으로 길손으로 떠나는 화자의 모습이 뒤따른다.


길손의 모습 또한 즉흥적이지 않다. 참대 지팡이와 짚신은 겨울을 견디기 위한 준비물이 아니라, 이미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최소한의 차림이다. 이로 보아 화자는 높새가 불기를 기다린 사람처럼 보인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무를 이유가 끝났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삶을 더 이어가기 위한 계산이 아니라, 계산을 멈출 수 있는 조건을 기다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길을 떠난 뒤에야 생활과 갈등과 산술을 잊는다. 그리고 마침내 백화를 깎아 묘표를 삼고, 동원에 피어오르는 한 떨기 백합이 되겠다고 말한다. 죽음은 파국이 아니라 도착에 가깝다. 삶을 버리고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삶의 한 국면을 끝까지 통과한 뒤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 시는 ‘왜’라는 이유를 물고 늘어질수록 멀어지고, 장면을 따라가듯 읽을 때 비로소 가까이 다가온다. 연을 보고, 나비를 보고, 그 바람 속에서 길을 떠날 준비가 끝난 사람의 등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 그 정도의 거리에서 이 시는 가장 또렷해진다.


이 시가 보여 주는 것은 삶의 어느 지점에서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에 품어 보았을 어떤 상태다. 계절은 앞으로 가고 있는데, 자신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이유를 설명할 말은 없고, 다만 그때를 기다리는 마음만 남아 있는 상태. ‘높새’가 부는 날,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그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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