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의 <연잣간>
삼밭 울바주엔 호박꽃이 희안한데
눈 가린 말은 돌방아를 메고
한종일 연잣간을 속아 돌고
치부책을 든 연자지기는 잎담배를 피었다.
머언 아랫말에 한나절 닭이 울고
돌배를 따는 아이들에게선 풋냄새가 났다
밀어 찌어가지고 오늘 친정엘 간다는 새댁
대추나무를 쳐다보고도 일없이 좋아했다
풋내나는 계절의 연잣간
노천명의 <연잣간>은 백석의 <연잣간>과 다른 풍경이다. 백석의 연잣간에는 생물과 무생물이 모두 편안하게 잘 깃들어 있는 모습을 그린 거라면, 노천명의 연잣간은 돌방아가 돌아가면서 방아를 찧는 현장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리얼하다. 눈이 가린 채 연자를 돌리는 말, 그 곁에서 치부책을 들고 잎담배를 피우는 연자지기, 멀리서 들려오는 닭 울음, 돌배를 따 먹는 아이들. 어느 하나 상징으로 부풀려지지 않은 채, 일상의 한 장면처럼 놓여 있다. 그래서 정겹지만 또 한편으로는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푹 빠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장날>에서처럼 삶의 궁핍함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시의 첫 행은 “삼밭 울바주엔 호박꽃이 희안한데” 호박이 열매가 아니라 꽃인 상태라는 것으로 계절이 가을이 아니라 여름임을 보여준다. 아직 수확의 계절은 아니지만 밀과 보리는 수확하였을 터, 그 밀을 찧어 새댁이 친정엘 간다고 한 걸로 봐 늦봄이나 초여름이라 할 것이다. 그런 계절의 연잣간의 풍경은 더욱 노동의 현장이면서 그것을 지켜보는 화자의 시선은 연민이나 비판으로 기울지 않는다.
눈 가린 말을 몰아 연자를 돌리고, 치부책을 든 연자지기가 그 곁을 지키는 장면은 그저 하나의 생활 장면으로 놓일 뿐이다. 화자는 이 세계에 개입하지 않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대신 시선은 곧 연잣간을 벗어나 먼 아랫마을의 닭 울음소리로, 덜 익은 돌배를 따 먹은 아이들에게서 나는 풋내로 이동한다.
연잣간에서 말은 눈을 가린 채 하루 종일 같은 자리를 돈다. ‘속아’ 돈다는 말은 말의 유인책이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해 눈을 가린, 생활의 오래된 속임이다. 말이 이 속임에 응하지 않으면 연자는 돌지 않고, 연자가 돌지 않으면 밀은 찧어지지 않는다. 말의 고된 노동과 착각 위에서 농촌의 살림이 굴러간다. 이 시는 그저 그렇게 작동하고 있는 연잣간의 하루를 보여줄 뿐이다.
연자지기의 손에 들린 치부책에는 아마도 말이 도는 횟수나 그 날 찧은 곡식의 개수나 마을 사람들의 외상 값 뭐 그런 목록이 적혀 있을 것이다. 연자지기는 말을 지키며 서서 장부를 들고 계산한다. 말의 눈을 가린 것은 생활의 노하우일 터이니 거거에서 잔인하거나 인색함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정하지도 않은 태도다. 생활에 길들여진 무심함이 읽힐 뿐이다.
시선은 이제 연잣간을 벗어나 먼 아랫마을로 향한다.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돌배를 따는 아이들에게서 풋내가 난다. 이 ‘풋내’를 은유로 끌어올릴 필요는 없다. 덜 익은 돌배의 풋내일 뿐이다. 먹을 게 넉넉했다면 굳이 익지 않은 돌배를 건드렸을 리 없다. 허기를 달래기 위한 선택의 흔적이다. 아직 익지 않은 계절의 냄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새댁의 등장은 연잣간의 풍경을 감정 쪽으로 기울이기보다는, 오히려 그 생활의 질서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밀을 찧어 가지고 친정에 간다는 말은 설레는 나들이가 아니라, 살림의 사정이 허락한 이동이다. 친정이 넉넉하지 않기에 곡식을 들고 가야 하고, 그 길이 쉽게 허락되지 않았기에 새댁은 대추나무를 쳐다보고도 ‘일없이’ 좋아한다. 이유를 붙일 수 없을 만큼 오래 눌려 있던 마음이 잠시 새어 나온 것이다. 이 기쁨은 가난을 잊게 하는 낭만이 아니라, 아직 충분하지 않은 삶 속에서 잠깐 허락된 숨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은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은 채, 그 계절의 살림과 같은 온도로 남는다.
이렇게 보면 〈연잣간〉은 향토적 정경을 그린 시라기보다는, 여름 초입 연잣간의 일상과 마을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감각적으로 기록한 시에 가깝다. 눈 가린 말이 같은 자리를 돌고, 연자지기는 치부책을 들고 계산하며, 아이들은 덜 익은 돌배로 허기를 달랜다. 여기에 화자의 마음을 슬쩍 드러내기라도 하듯 새댁의 친정나들이가 더해진다. 이 소박한 농촌 사람들의 장면은 가난을 드러내지만 비극으로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대신 정답다는 인상 뒤에 생활의 궁핍도 함께 내보인다. 화자는 이 세계와 거리를 둔 채 지켜보며, 그저 “그 시절의 하루는 이랬다”고 말하는 듯하다. 독자 또한 화자가 남겨 둔 거리 때문에 끌려 들어가기보다, 같은 자리에 서서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