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29

by 인상파

김소월 〈父母〉


落葉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來日날에

내가 父母 되어서 알아보랴?



태생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


김소월의 〈부모〉는 양희은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때마다 묘하게 구슬프다. 단지 음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부모란 늘 곁에 있으면서도 끝내 다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언젠가는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부모라는 말에는 그렇게 이미 시간의 비대칭이 들어 있다. 우리는 부모보다 늦게 와서, 부모보다 오래 남는 쪽에 서게 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부모는 보호자이면서도 미지의 세계에 가까웠다. 그들이 나를 낳아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선뜻 믿기 어려운 마음을 품는다. 그들이 살아온 시간과 몸의 역사, 나를 낳기까지의 사연은 아이의 이해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어떻게 부모가 되었는지, 그 자리에 어떤 무게가 얹혀 있는지 아이는 알 수 없다. 설명을 듣는다 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칠 뿐이다.


소월의 〈부모〉는 바로 그 미지의 상태를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붙잡고 있는 시다. 겨울의 기나긴 밤, 낙엽이 우수수 쓸려가는 시간 속에서 화자는 어머니 곁에 앉아 옛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는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라, 화자를 이 세계로 데려온 시간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 화자는 어머니와 함께하고 있는 자신의 자리를 문득 의식하게 된다. 보호받는 쪽에 앉아 있다는 사실, 아직은 묻기만 할 수 있고 이해하지는 못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자각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이 해묵은 질문은 한 개인의 탄생을 묻는 물음이면서 동시에 인류사의 기원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누구의 몸에서 태어났는지를 묻는 일은 결국 인간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질문이지만 쉽게 닳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태어난 이유를 설명받을 수는 있어도, 태어났다는 사실의 무게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 이해는 말이 아니라 시간과 관계, 몸의 경험을 통해서만 조금씩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는 어린아이 특유의 순진함과 동시에, 삶의 구조를 직감하는 순간의 고요한 성숙이 함께 담겨 있다. 부모는 아직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지만, 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금의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화자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따뜻하면서도 쓸쓸하다.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이미 서로 다른 시간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느껴지는 고적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장면임에도 질문은 철저히 혼자의 몫이다. 그리고 “내가 부모 되어 알아보랴”는 말 속에는 부모에게서 멀어져야 하는 미래의 시간이 은근히 겹쳐 있다.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떠나야 하고, 자식의 자리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결국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역설. 소월은 이 사실을 슬프다 말하지 않고, 다만 겨울밤처럼 조용히 놓아둔다.


어쩌면 〈부모〉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언젠가는 누군가의 부모가 되거나, 혹은 그 가능성을 사유하며 살아간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삶의 다른 자리에서, 다른 무게로 다시 떠오를 뿐이다.


소월은 부모라는 미지의 세계를 겨울밤의 적막과 낙엽의 소리 속에 조용히 내려놓으며, 그 세계를 설명하거나 해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다만 어머니 곁에 앉아 있는 아이의 자리를 보여줄 뿐이다. 보호받는 쪽에 앉아 있으되, 이미 질문을 품기 시작한 자리, 그러나 아직은 이해에 이르지 못한 자리다.


그래서 〈부모〉는 울음이 없는 시이지만 읽고 나면 오래도록 쓸쓸하다. 슬픔을 말하지 않는데도 슬픔이 남고, 이별을 말하지 않는데도 시간의 간극이 느껴진다. 부모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시간의 방향, 이해와 상실이 동시에 진행되는 그 역설이 겨울밤처럼 고요히 시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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