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가 관념으로 남았던 시간
이병기의 「난초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다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 받어 사느니라(1939, 『가람시조집』)
난초가 관념으로 남았던 시간
이병기는 난초의 시인으로 기억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이병기의 시조는 난초였다. 단정하고, 고요하고, 고결한 존재. 그런데 어린 나에게 난초는 이상한 식물이었다. 억새풀처럼 가늘고 길쭉한 잎사귀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야단법석을 떠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난초를 본 게 아니라, 난초에 붙은 말들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고결, 품위, 절제, 속됨과의 거리가 있는 말들. 난초는 실물보다 그런 말로 먼저 다가왔다. 향기를 맡아본 기억도 없고, 손으로 만져본 기억도 없는데, 이미 ‘좋은 것’이라는 평가는 끝나 있었다. 그냥 알아야 할 것처럼 주어졌다.
난초가 조선 선비의 고결한 태도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 상징에서 난초가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이병기가 그 선비적 태도를 시로 형상화한 시인이라는 점도 인정한다. 다만, 이제는 분명히 구분하고 싶다. 문제는 시가 아니라 자리였다는 걸을. 이병기의 난초 시조는 근대교육의 교과서 속으로 들어가면서 ‘국민적 미덕’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되었다. 선비정신은 원래 스스로를 단속하는 윤리였을 텐데, 교과서 안에서는 아이들이 먼저 갖추어야 할 태도가 되었다. 선택의 문제였던 삶의 방식이 기준이 되었고, 흔들리기 전부터 단정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난초는 아이들에게 너무 이른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살아보지도 않았고, 실패도 해보지 않았고, 흔들리는 마음이 어떤 건지도 모를 때, 고결과 품위를 먼저 요구받는다는 느낌. 돌이켜보면 내가 난초를 이해하지 못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난초가 이미 나 같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병기의 난초 시조를 읽으면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남는다. 그의 시에는 고결과 품위의 관념이 분명히 남아 있다. 훈계하지는 않지만, 이미 옳다고 정해진 세계 위에 서 있는 느낌. 그 단정함이 아름답다는 걸 알면서도, 숨이 조금 막히는 순간이 있다. 아마도 나는 너무 오래 흔들리며 살아온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이 불편함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예전처럼 나 자신이 부족해서 느끼는 불편함은 아니다. 난초가 관념이 된 과정, 그 시가 어떤 방식으로 선택되고 배치되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병기가 관념을 주입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시가 관념 주입에 가장 적합한 텍스트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난초를 숭배하지도, 애써 밀어내지도 않는다. 다만 왜 불편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난초는 여전히 난초이고, 이병기의 시조는 여전히 선비적 미학의 산물이다. 다만 그것이 아이의 삶 위에 먼저 얹어졌던 방식이 문제였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난초가 관념으로 남아 있던 시간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렇게 돌아보는 일은, 난초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난초를 제 자리로 돌려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난초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고결하라고도, 닮으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그저, 난초로서 거기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