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34

호수만큼의 보고픔

by 인상파

정지용의 〈호수〉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호수만큼의 보고픔


정지용의 〈호수〉는 짧고 단아해서 금방 기억되는 시다. 보고 싶으나 볼 수 없을 때, 그 사람을 떠올리듯 중얼거리게 되는 시이기도 하다. 대학 다닐 무렵에는 이 시가 연애시처럼 읽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의 크기를 처음으로 실감하던 시절의 독해였을 것이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얼굴과 마음, 손바닥 둘과 호수, 폭 가림과 눈 감음.서로 대조되면서도 대구를 이루는 이 짧은 시는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깊고 큰지 도무지 재기 어렵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얼굴은 가릴 수 있지만 마음은 가릴 수 없다는 단순한 진실이 이토록 단정한 언어로 놓인다.


보고 싶은 마음의 크기를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에 비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또 깊이 보고 싶어해 본 사람이리라.


호수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호수는 넘치지도, 흘러가지도 못한 채 제 몸을 가두고 안으로만 깊어지는 물이다. 이 시의 ‘호수’는 바로 그런 마음의 형상처럼 느껴진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를 품고 있는 상태. 보고 싶다는 마음을 쉽게 말로 풀어내지 못하고, 차라리 고요 속에 가두어 두는 쪽을 택한 사람의 마음과 닮아 있다.


이 시 역시 그의 〈고향〉처럼 어떤 시대적 배경과도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 그리움과 보고픔이라는 감정 자체에 곧장 닿아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상실이나 역사적 비애와 무관하게 읽히는 시다. 너무 개인적이어서 오히려 누구에게나 돌아갈 자리가 생기는 시다.


다만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어쩐지 이 시는 그리워하는 대상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쉽게 충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쓰인 시처럼 느껴진다. 보고 싶다는 말이 곧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고, 마음만으로는 건널 수 없는 거리가 분명히 존재하던 시절의 감각이다. 그리움이 크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시의 보고픔은 조급하지도, 호소하지도 않는다. 연락하면 닿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대신, 아예 닿을 길이 없다는 인식 위에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리움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차라리 눈을 감는 선택으로 귀결되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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