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50

노천명의 <장날>

by 인상파

노천명의 <장날>


대추 밤을 돈 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루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장날의 귀환


노천명의 〈장날〉을 학교 다닐 때 처음 읽었을 때, 제목과는 달리 참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날이라면 으레 떠오르는 북적임과 흥정의 소리, 명절을 앞둔 들뜬 분위기 같은 것을 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하루의 피로와 가난의 무게가 먼저 다가왔다.


“대추 밤을 돈 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 한 줄은 이 집의 형편을 단번에 드러낸다. 시대가 일제시대인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난이 일상이었던 때라 하더라도, 그 풍경은 서럽다. 대추와 밤을 돈으로 바꿔야 그 돈으로 추석을 차릴 수 있는 상황. 아주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선뜻 내주지 못하고 울려야 했으니 말이다.


집에서 장터까지는 이십 리. 요즘 거리로 환산하면 약 8킬로미터, 왕복 16킬로미터쯤 된다. 산골길을 굽이굽이 돌아야 했다면 체감 거리는 더 길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새벽에 나섰을 터. 그 새벽에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달라며 운다. 몇 알을 쥐여 주며 달랠 만도 하건만 그러지 못했다. 그 한 움큼이라도 팔아야 한 푼이 되었을 것이고, 아껴야 할 형편이었을 것이다. 부모라면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일만큼 뿌듯한 순간도 없을 텐데, 그 몇 알을 내주지 못한 마음은 또 얼마나 무거웠을까.


이후 시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시장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으며 아쉬운 소리를 했을지, 값을 깎아달라는 말 앞에서 잠시 망설였을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대추와 밤을 팔며 요기도 변변히 하지 못했는지, 저녁 하늘의 달을 송편처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괜히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발걸음도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송편 같은 반달, 성황당 사시나무의 무시무시한 그림자,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는 나귀방울 소리. 이 시는 장날의 중심을 시장이 아니라, 시장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장면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쓸쓸하다.


시장은 통째로 비워져 있다. 흥정도, 오가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값을 따지는 손길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남은 것은 길과 새벽과 이쁜이의 울음, 저녁과 나귀방울 소리와 개 짖는 소리다. 장날의 성과가 아니라 장날의 피로가 먼저 느껴진다. 무엇을 얼마나 팔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루를 통째로 내어주고 돌아오는 몸의 무게만이 또렷하다.


송편 같은 반달은 추석을 떠올리게 하지만, 둥근 달빛이 풍요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녁의 적막을 더 또렷하게 비춘다. 성황당 사시나무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고, 나귀방울 소리는 고개를 넘어 서서히 가까워진다. 그 소리에는 흥겨움 대신 지친 숨결이 묻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시는 길 위에서 소모된 하루의 기록처럼 보인다. 새벽에 떠나 밤에야 돌아오는 시간의 길이, 이십 리를 오간 거리의 무게, 아이의 울음을 남겨 둔 채 나섰던 마음까지 겹쳐 저녁의 장면에 응축된다.


그리고 귀환의 순간,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간다. 그 장면은 쓸쓸하면서도 묘하게 정겹다. 그 덕분에 이 시는 감상으로 기울지 않고 생활의 온기를 남긴다. 장터의 소란 대신 집 앞의 일상이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사람을 다시 삶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고달픈 하루였지만, 돌아올 집이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처음 읽었을 때 막연히 느꼈던 쓸쓸함은 이제 조금 분명해졌다. 그것은 가난 때문이라기보다, 가난을 아무렇지 않은 듯 견뎌야 했던 하루의 표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달픈 장날이라면, 여전히 노천명의 이 시가 먼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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