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회의 〈아무튼, 여름〉
김신회의 〈아무튼, 여름〉
식탁 위의 여름
ㅡ김신회의 〈아무튼, 여름〉을 읽고
아무튼, 여름이다. 여름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수박과 옥수수의 계절이다. 여름을 생각하면 바다보다 먼저 수박의 붉은 속살이 떠오르고, 파도 소리보다 옥수수 삶는 냄새가 밀려온다.
수박에 관한 어느 작가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아이를 갖지 않으려 하자 남편이 아이를 낳아 수박 맛을 보여주자고 했고, 그 말에 넘어가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여름의 단맛이 한 생을 부르는 이유가 되었다는 고백은 어쩐지 진실처럼 들린다.
우리 아들은 초등학생 때 학교 작문 숙제로 이렇게 써 갔다.
“여름에는 수박을 먹으며, 겨울에는 귤을 까먹으면서 책을 보면 더 즐겁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아이의 계절이 이미 맛으로 채워져 있다는 걸 알았다. 풍경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과일의 색과 냄새라니, 책의 즐거움마저 입안의 단맛과 함께 기억한다니. 아이에게 여름은 더위가 아니라 시원한 수박이었고, 겨울은 추위가 아니라 새콤달콤한 귤 맛이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다. 세상이 아직은 그렇게 달고 새콤하게 다가가고 있다는 의미 같아서. 아이의 짧은 문장 속에는 우리 집 식탁에 수북이 쌓이던 귤 껍질과 냉장고 안의 수박 통이 들어 있었다. 둥글고 서툰 글씨가 단맛처럼 번져 보였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바다로, 산으로, 호텔 수영장으로 떠나지만 우리 집의 여름은 부엌에서 시작되었다. 어른 머리통만 한 수박을 사 와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깍두기처럼 큼직하게 썰어 락앤락 통에 두세 통 가득 담아 둔다.
바깥에서 땀을 흘리고 돌아온 식구들이 “더워, 더워”를 연발하며 들어설 때, 나는 얼른 냉장고를 연다. 차가운 붉은 수박을 한두 조각 베어 물고 나서야 “아, 이제야 살겠다.” 하는 소리가 나온다. 그 말이 나오면 나는 괜히 마음이 놓인다. 오늘도 이 집이 제 몫의 더위를 무사히 견뎌낸 것 같아서.
턱을 타고 흐르는 즙을 손등으로 훔치며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조각씩 집어 들고, 씨를 접시에 툭툭 뱉어가며 그날 있었던 일을 풀어 놓는다. 수박 한 통이 비어 갈수록 식탁 위의 웃음도 늘어난다. 땀은 식고 더위는 가라앉는다. 말수가 늘고, 서로를 향한 눈길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여름을 난다.
수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같은 단맛을 베어 물던 시간.
멀리 떠나지 않아도 수박으로 충분했다.
우리 집의 피서는 늘 식탁 위에 있었다.
그리고 옥수수.
가족들은 옥수수를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며 한 개도 다 먹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옥수수라면 사족을 못 쓴다. 앉은 자리에서 예닐곱 개쯤은 말끔히 해치운다.
스무 개가 들어 있는 자루를 사 와 커다란 찜통에 두 번 나누어 찐다. 찜통 같은 더위에 찜통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솥뚜껑을 여는 순간 눅진한 단내가 번진다.
막 솥에서 꺼낸 옥수수를 양손에 번갈아 쥐고 호호 불어가며 한 줄, 또 한 줄 뜯어 먹는다. 이빨에 씹히는 알갱이의 탄력과 혀끝에 남는 달큰함. 그 순간만큼은 여름이 아직 한창이다.
그렇게 몇 망을 삶아 먹고 나면 어느 날 문득 단맛과 고소함이 조금씩 물리기 시작한다. 그때야 안다. 옥수수가 쏟아져 나오던 절정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여름은 그렇게, 몇 망의 옥수수를 삶고 먹고, 남은 것은 냉동실에 쟁여 둔 뒤에야 끝자락을 드러낸다. 수박의 붉은 속살이 냉장고에서 자리를 잃고, 옥수수의 단맛이 무뎌질 즈음, 여름이 내 곁에서 한 걸음 물러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