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의 <바위>
유치환의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愛憐에 물들지 않고
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億年 非情의 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내 죽으면,
내가 죽으면 무엇이 되고 싶을까.
한때는 바위 같은 무생물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바위처럼 단단하고 강인함을 드러내는 존재는 되고 싶지 않았다. 바위가 수억 년을 지나 흙과 먼지가 될 것은 당연지사.
그 긴 세월을 또다시 견디며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자연의 이치대로 한 줌 흙과 먼지가 되어 가볍고 산뜻하게 휘날리고 싶었다.
억년의 침묵이 아니라 순간의 흩어짐.
깎이고 채찍질하며 버티는 생이 아니라 바람에 실려 사라지는 생.
그렇게 이 시는 청년 시절의 나에게 삶과 죽음을 단단함이 아니라 가벼움으로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가벼움의 세상으로 언제든 건너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문득문득 몰려온다. 청년 시절처럼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제는 죽으면 무엇이 될까를 상상하기보다 죽음이 가져올 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가볍게 흩어지고 싶었던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는 허투루 흩어지고 싶지 않다.
한 줌 흙이 되더라도 그 흙 위에 무엇이 자랄지 생각하게 되고, 한 줄 먼지가 되더라도 어디에 내려앉을지 돌아보게 된다.
청년의 나는 버티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버텨온 시간들을 함부로 흩뜨리고 싶지 않다.
죽음은 더 이상 ‘무엇이 될까’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의 문제가 되었다.
흩어지되,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지지는 않고 싶다.
이제 달랑 혼자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년 시절에는 내 한 몸의 가벼움만 생각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내가 가고 나면 남겨질 아이들이 있고, 삼십 년, 사십 년을 함께 건너온 친구들이 있고, 오가며 얼굴을 마주해 온 이웃과 지인들이 있다.
나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내 존재를 함부로 무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사람 하나가 비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시간 속에서 구멍이 생기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죽음은 가볍게 흩어지는 상상이 아니라 남겨질 이들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조심스러운 문제로 남는다.
사라짐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관계의 일이다. 한 사람이 떠나면 그를 둘러싸고 있던 관계들이 조금씩 느슨해진다.
시간이 더 흐르면 어느 시점에서는 그 관계도 완전히 무화되겠지.
그러나 그 무화되지 않은 시간까지는 내가 남긴 자리가 차갑지 않았기를 바란다.
내가 스쳐 간 자리, 내가 함께 웃고 울던 자리, 내가 건넸던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기보다 기억되는 동안만이라도 온기가 있었기를 바란다.
그래서 무엇이 되기보다 오늘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묻는다. 결국 어떻게 살아가는가의 일이다.
죽음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하루의 태도를 가만히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