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사, 가스불
아뿔사, 가스불
요양보호사 일을 마치고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 집으로 달렸다. 어머니가 여섯 시 반쯤 오신다. 십여 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마음은 조급했다. 평소라면 딸이 지하주차장에서 할머니를 모셔 올라오지만 오늘은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
그때 소방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순간 번쩍, 미역국이 떠올랐다.
아뿔사.
가스불을 켜 놓고 나온 것만 같았다. 불을 끈 기억이 없다. 집으로 향하던 자전거 머리를 급히 돌려 다시 어르신 집으로 향했다. 페달을 밟는 건지 발을 밟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미 연기가 집안을 채운 것은 아닐까. 이미 불이 붙은 것은 아닐까.
두 어르신이 치매를 앓고 있는 집이다. 그 생각이 머리를 덮치자 이미 내 정신이 아니었다. 마음이 급해 붉은 신호등도 무시하고 달렸다.
대상자 집 근처 출입구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왜 그리 더디게 오는지. 차라리 열한 층을 뛰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간신히 올라탄 뒤에도 마음은 이미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문을 열었는데 집안은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타는 냄새도, 부연 연기도 없었다. 남자 어르신은 거실에서 음소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여자 어르신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가 태그를 찍고 나올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부엌으로 가서 가스레인지를 들여다봤다. 밸브는 단단히 잠겨 있었다. 거짓말처럼. 이럴 때는 정말 속은 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른다.
아, 그 몇 분 사이에 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간 온갖 불길한 상상들. 국솥이 시커멓게 타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다가 결국 불길이 솟고, 두 어르신이 그 속에서 미처 피하지 못하는 장면까지 떠올랐다.
하지만 집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요했다.
가쁜 숨을 고르고 여자 어르신께 다시 들른 이유를 설명한 뒤 집을 나왔다. 몸에서 식은땀이 났는지 바깥바람에 한기가 돌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아이와 병원에 가 있는데 가스불을 끄지 않고 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국솥이 타고 연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는 장면이 펼쳐진다. 집까지 달려가도 늦을 것 같아 급한 마음에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알려 주고 확인을 부탁하기도 했다.
잠시 뒤 무심하게 핸드폰 소리가 울린다.
집안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나의 기억을 배반하는 이런 일들로 몇 차례 가슴을 쓸어내렸다.
참 희한한 일이다.
가스불을 켠 기억은 있는데 끈 기억은 없다.
그런데 불은 꺼져 있다.
도대체 그 불을 누가 끈단 말인가.
우렁이 색시가 설거지만 하는 줄 알았더니 요즘에는 켜 놓은 가스불도 알아서 꺼 주는 모양이다.
가슴을 쓸어내린 하루였다.
아뿔사, 가스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