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나의 집>
김소월의 <나의 집>
들가에 떨어져 나가 앉은 멧기슭의
넓은 바다의 물가 뒤에,
나는 지으리, 나의 집을,
다시금 큰길을 앞에다 두고.
길로 지나가는 그 사람들은
제각기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하이얀 여울턱에 날은 저물 때.
나는 문간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 새가 울며 지새는 그늘로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번쩍이며 오는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손을 눈여겨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화자가 짓겠다는 집을 떠올리며 잠시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를 생각했다. 그 시에서 집은 강변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강이 아니라 넓은 바다의 물가 뒤다. 물가라는 점에서는 닮았지만 바다는 강보다 훨씬 넓고 열려 있는 공간이다.
그 사람이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의 마음만큼은 분명하다.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은 간절하고 애절하다. 한 번이라도 봤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이 그로 하여금 사람이 많은 바다 근처와 큰길 뒤에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게 한다. 그 조건이 어떠하든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목에 서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 사람을 발견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그의 ‘그대’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어떤 까닭으로 그는 그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먼 발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지도 모를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을까. 그의 그대가 그의 마음을 알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그가 속을 태우지는 않을 터인데.
그의 마음은 단순하지 않다. 그 기다림은 하루의 한때가 아니라 삶 그 자체처럼 보인다. 그는 문간에 서서 희뿌옇게 아침이 밝아올 때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길을 바라본다. 그것도 문간에 서서. 문간, 안과 밖 사이의 자리, 머물러 있으면서도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자리다.
그곳에서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묻는다.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확신은 없다. 이름을 부를 수도 없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혹시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이 물음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되묻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그 ‘그대’는 지금 이 길을 실제로 지나갈 사람일 수도 있고, 이미 멀어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은 떠나가도 기억 속에서는 계속 길을 걸어온다. 낯선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문득 “혹시 저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집’은 기다림을 위해 세워 둔 자리다. 길을 바라보고,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자리다. 화자는 그 집의 문간에 서서 온종일 그가 지나가는지를 내다본다.
길 위의 사람들은 “제각기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을 가지만, 화자는 그 길을 가지 않는다. 그는 한 자리에서 한 사람을 마음속에 붙들고 서 있다.
그래서 이 시의 기다림은 단순한 짝사랑의 기다림이라기보다 놓지 못한 그리움의 기다림처럼 보인다. 그리움이 집이 되고, 그 집의 문간이 기다림의 자리가 된다. 그리고 화자는 그 자리에서 여전히 묻고 있을 것이다.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