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路程記〉
이육사의 〈路程記〉
목숨이란 마-치 께여진 배쪼각
여기저기 흐터져 마을 이 한구죽죽한 漁村보다 어설푸고
삶의 틔끌만 오래묵은 布帆처럼 달어매엿다.
남들은 깃벗다는 젊은날이엿건만
밤마다 내꿈은 西海를 密航하는 「쩡크」와 갓해
소금에 짤고 潮水에 부프러 올넛다
항상 흐렷한밤 暗礁를 버서나면 颱風과 싸워가고
傳說에 읽어본 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南十字星이 빈저주도 안엇다.
쫏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쌋다.
새벽 밀물에 밀여온 거믜인양
다삭어빠진 소라 깍질에 나는 부터왓다
머-ㄴ 港口의 路程에 흘너간 生活을 들여다보며(자오선, 1937)
깨진 뱃조각의 항해
이육사의 〈광야〉, 〈절정〉, 〈꽃〉, 〈교목〉 같은 시들은 어쩐지 메마른 느낌을 준다. 결연하고 단단한 목소리가 먼저 들려와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숨결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 〈연보〉와 〈노정기〉를 읽으며 이육사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가 어쩐지 좋아졌다.
일제시대 문학에서 그의 시는 대개 ‘저항’이라는 말로 갈무리된다. 그래서 그를 늘 나와는 격이 다른 삶을 산 사람처럼 느꼈다. 단단하고 비장한 시인의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정기〉를 읽다 보니 그가 걸어온 여정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삶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다른, 훨씬 험하고 가혹한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흔들리고 두려워하고 지쳐 가는 한 인간의 마음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이란 마치 깨진 뱃조각’ 같다는 첫 시구부터 이 시는 온전한 항해일 수 없음을 드러낸다. 그런 목숨을 붙들고 그는 암초와 태풍을 건너야 했다. 겨우 육지에 올라서도 현실은 열대식물처럼 발목을 휘감는다.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그를 기다리는 것은 쉼이 아니라 또 다른 위협이다. 쫓기는 마음과 지친 몸으로 지평선을 겨우 기어오르지만 그곳에서도 자유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어디에도 안식처가 없는 삶이다.
이 시는 쪼개진 뱃조각 같은 목숨으로 온갖 위태롭고 위협적인 환경 속에 놓여 그것들과 맞닥뜨리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고백처럼 읽힌다. 암초와 태풍, 길잡이 별조차 비추지 않는 밤바다 같은 현실 속에서 그는 늘 쫓기는 마음과 지친 몸으로 버텨야 했다. 그렇게 흔들리고 밀려가며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조금씩 닳아가고, 또 나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 시절을 그린 부분은 가슴이 아프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지만 화자의 그것은 서해를 밀항하는 정크와 같았고, 소금에 절고 조수에 부풀어 올랐으니 얼마나 불안과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었는지를 고백하고 있다. 육사가 살았던 시대는 그가 평온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나라를 잃은 식민지의 현실 속에서 그의 젊은 날은 기쁨과 낭만의 시간이 아니라 늘 쫓기고 숨어 다녀야 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시에서 젊음은 환하게 열려 있는 시절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밤마다 서해를 몰래 건너는 밀항선처럼 불안과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어둠 속의 항해, 파도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목적지도 확실하지 않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 처지. 그 속에서 그의 꿈조차 소금에 절고 조수에 부풀어 오른 배처럼 거칠게 흔들린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단순히 바다를 떠도는 항해의 풍경이 아니라, 나라 잃은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인간의 젊은 날이 얼마나 위태롭고 고단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처럼 읽힌다. 남들에게는 기쁨의 시간이었을 젊은 날이 그에게는 불안한 밤바다를 건너는 밀항의 시간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삶의 끝에서 그는 자신을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붙어왔다”고 말한다. 바다를 힘차게 가르는 배가 아니라 밀물에 떠밀려 온 낡은 소라 껍질에 붙어 있는 존재라니. 그 이미지에는 지치고 닳아버린 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리고 “먼 항구의 노정에 흘러간 생활을 들여다보며”라는 구절에서는 긴 항해 끝에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거친 시대를 지나온 한 인간이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삶의 흔적을 바라보는 듯한 쓸쓸한 풍경이다.
그 고백은 담담하다. 자신의 삶을 영웅적으로 꾸미지도 않고 큰 소리로 탄식하지도 않는다. 다만 파도에 떠밀려 자신이 선 자리까지 흘러온 삶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그런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저항시인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인간의 고단한 숨결이 비로소 느껴진다.
그는 그 항해를 멈추지 않았다. 부서진 배 조각일지라도 바다 위에 떠 있는 동안 여정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는 위태로운 삶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그 위태로움 속에서도 끝내 흘러가며 살아온 한 생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며 나는 그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단단한 의지로만 기억되던 시인이 아니라, 위태로운 삶의 물결 속에서 흔들리고 지치며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저항의 상징으로 서 있던 시인이 아니라 거친 시대의 바다를 끝내 건너온 한 사람으로.
앞으로 이육사, 그의 시를 다시 펼칠 때마다 나는 먼저 그 단단한 목소리보다, 깨진 뱃조각 하나를 붙들고 밤바다를 건너던 한 사람의 고된 숨결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