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62

이육사의 <春愁三題>

by 인상파

이육사의 <春愁三題>


1

이른 아침 골목 길을 미나리 장수가 길게 외고 갑니다.

할머니의 흐린 瞳子는 蒼空에 무엇을 달리시는지

아마도 ×에 간 맏아들의 입맛을 그려나 보나 봐요.


2

시냇가 버드나무 이따금 흐느적거립니다

漂母의 방망이 소린 왜 저리 모날까요

쨍쨍한 이 볕살에 누더기만 빨기는 짜증이 난 게죠


3

빌딩의 避雷針에 아지랑이 걸려서 헐덕거립니다

돌아온 제비떼 抛射線을 그리며 날려 재재거리는 건

깃들인 옛집터를 찾아 못 찾는 괴롬 같구료(1935)



봄의 풍경과 봄의 시름


미나리가 맛있는 철이다. 영화 〈미나리〉가 아니더라도 미나리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있다. 볕이 따사로운 양지쪽 밭 웅덩이에는 산에서 내려온 물이 고여 있었다. 둠벙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그저 웅덩이 정도였다. 웅덩이 가장자리에는 그 물을 먹고 봄이 되면 미나리가 파릇파릇하게 돋아나곤 했다. 다른 풀들은 아직 추위에 숨죽이고 있는데, 미나리만은 번뜩이는 생기를 자랑하고 있는 듯해 언제나 놀라웠다.


아버지가 낫으로 그 미나리를 베어오면 어머니는 그것을 살짝 데쳐 초고장에 바지락을 넣어 무쳐 주셨다. 그 맛이란, 겨울 내내 입안에 남아 있던 군내가 물러가고 봄의 향기가 번지는 듯했다. 그때 비로소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혀로 먼저 알게 되었다.


골목 어귀에서 미나리 장수가 “미나리―” 하고 길게 외치고 지나가면 누군가는 대문을 열고 장수를 불러들여 미나리를 살 것만 같다. 봄이 왔으니 미나리 한 단쯤 사다 무쳐 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할머니는 미나리 장수를 부르지 않는다. 대신 먼 허공을 바라본다. 맏아들이 미나리를 좋아했던 것일까. 할머니의 흐린 눈은 푸른 하늘 어딘가를 더듬는다. 마치 그 하늘 아래 어딘가에 아들이 있기라도 한 듯, 미나리를 사기보다 먼저 아들의 입맛을 떠올린다. 봄의 소리가 사람의 기억을 건드리는 순간이다.


화자의 시선은 골목에서 시냇가로 옮겨간다. 볕 좋은 봄날이다. 버드나무가 이따금 흐느적거리고 시냇물도 졸졸 흐른다. 겨울이 끝나 얼음이 풀리면 사람들은 빨래를 들고 냇가에 나와 앉아 방망이로 옷을 두드린다. 겨울의 묵은 때를 몰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러나 이 시에서 들리는 방망이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모나 있다. 여인이 두드리고 있는 것은 봄처럼 맑고 부드러운 옷이 아니라 누더기뿐이다. 쨍쨍한 볕 아래서도 남루한 생활은 그대로다. 그래서 방망이 소리에도 짜증이 묻어난 것일 게다.


마지막은 그 동네의 건물 풍경에 가 닿아 있다. 빌딩의 피뢰침에 아지랑이가 걸려 헐떡거린다. 봄이면 들판이나 처마 끝에서 부드럽게 피어오를 법한 아지랑이가 이 시에서는 차가운 철 구조물에 걸려 있다. 계절의 부드러움과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돌아온 제비들도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제비들은 포사선을 그리며 재재거리지만 깃들일 집을 찾지 못한 듯하다. 작년의 그 처마가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옛 집터를 찾지 못해 허공을 맴도는 제비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


‘춘수삼제’. 봄의 시름이 세 가지다. 미나리 장수, 시냇가의 빨래하는 여인, 돌아온 제비를 통해 봄을 알리고 있지만 실은 그 안에 봄의 기쁨은 없다. 미나리 장수의 외침은 멀리 떠난 아들을 떠올리게 하고, 시냇가의 방망이 소리는 남루한 삶의 짜증을 담고 있으며, 돌아온 제비는 옛집을 찾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돈다.


봄의 풍경은 분명한데 그 속에 깃든 마음은 가볍지 않다. 그래서 이육사의 봄에는 봄소식보다 먼저 사람의 시름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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