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63

이육사의 <바다의 마음>

by 인상파

이육사의 <바다의 마음>


물새 발톱은 바다를 할퀴고

바다는 바람에 입김을 분다.

여기 바다의 恩寵이 잠자고잇다.


힌돝(白帆)은 바다를 칼질하고

바다는 하늘을 간절너본다.

여기 바다의 雅量이 간직여잇다.


날근 그물은 바다를 얽고

바다는 大陸을 푸른 보로싼다.

여기 바다의 陰謀가 서리워잇다.



바다의 두 얼굴


이육사의 〈바다의 마음〉은 바다의 양면성을 노래한 작품이다. 바다는 한편으로 은총과 아량을 지닌 존재로 그려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깊은 속에 어떤 음모를 숨기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바다의 모습은 시인이 삶 속에서 경험한 바다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시는 물새와 흰돛을 단 배가 지나가고 낡은 그물이 던져진 바다 풍경을 보여준다. 첫 연에서 물새가 발톱으로 먹이를 낚아채는 순간 바다 표면이 스친다. 그 바람에 바람이 일었을 것이다. 잠시 뒤 이어지는 2연에서는 흰 돛을 단 배가 지나가며 바다를 가른다. 시인은 그것을 “바다를 칼질한다”고 표현한다. 할퀴이고 칼질을 당한 바다. 성을 낼 법도 하다. 그러나 바다는 대신 바람의 입김을 보내고, 하늘을 간지럽힌다. 상처를 입으면서도 생명의 숨결을 내보내는 바다. 시인은 그 마음을 바다의 은총과 아량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연에 이르면 낡은 그물이 바다를 얽고 있다. 다시 한 번 바다는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바다는 대륙을 껴안듯 푸른 보로 감싼다. 여기까지 보면 바다는 여전히 은총과 아량을 베풀고 있다.


하지만 바다의 마음은 보여준 것과 다르다. 마지막 시구는 “바다의 음모가 서리워 있다”고 한다. 만약 ‘음모’가 바다의 긍정적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라면 시인은 ‘비밀’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굳이 음모라는 단어를 택한다. 이 말에는 은근히 숨어 있는 바다의 위협과 사나움의 기운이 함께 배어 있다.


그렇다면 이 시의 바다는 은총과 아량만을 지닌 온화한 존재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겉으로는 상처를 받는 듯 보이면서도 여전히 온화하지만, 그 깊은 속에는 언제든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힘을 감추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육사의 〈노정기〉를 떠올리면 이런 바다의 얼굴이 더 또렷해진다. 그는 젊음을 “서해를 밀항하는 정크와 같애”라고 표현하면서 어둠을 타고 서해를 건너는 밀항선을 떠올리거나 암초를 벗어나면 태풍과 싸우는 등 바다는 그런 사납고 위협적인 곳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바다가 결코 평온한 풍경만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에게 바다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위험과 탈출, 긴장과 희망이 뒤섞인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다의 마음〉의 바다는 하나의 얼굴만을 가진 바다가 아니다. 할퀴이고 칼질을 당하면서도 모든 것을 품어 주는 은총과 아량의 바다, 그리고 깊은 속에서 사나운 힘을 숨기고 있는 음모의 바다. 바다의 마음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너그러워 보이지만, 그 깊은 곳에는 언제든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힘이 조용히 서려 있는 마음.


이육사는 그런 바다를 헤치며 살았던 사람이다. 식민지의 억압 속에서 그는 암초를 돌아가듯 길을 찾았고, 때로는 태풍을 마주한 배처럼 거친 시간을 건너야 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바다는 그가 몸으로 지나온 삶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바다의 은총과 아량을 보면서도 그 깊은 속에 서린 음모를 함께 보았는지도 모른다. 바다는 그에게 위로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긴장과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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