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수라(修羅)
백석의 수라(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 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작은 생명 앞에서 멈추는 마음
백석의 시 「수라」를 처음 읽을 때 거미를 한자로 ‘수라’라고 하는 줄 알았다. 내가 몰랐던 단어인가 싶었다. 김소월의 「산유화」를 읽으며 ‘산유화’라는 꽃이 따로 있는 줄 지레짐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시를 읽다 보니 거미 이야기가 계속 나오기에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그래서 이 시를 그저 무심코 쓸어버린 거미에 대한 미안함, 인간의 작은 행동이 미물에게는 큰 사고가 될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로만 읽었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뒤늦게 ‘수라’가 불교에서 말하는 아수라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시의 제목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거미 몇 마리 이야기로 보이던 이 시에 왜 그런 큰 이름이 붙어 있을까 궁금해진 것이다. 하지만 시를 다시 읽어보아도 여전히 내가 먼저 보게 되는 것은 거창한 상징이 아니라 작은 생명 앞에서 흔들리는 한 인간의 마음이었다.
시의 시작은 단순하다. 방바닥에 떨어진 거미새끼 하나를 화자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그 순간에는 어떤 감정도 없다. 그런데 얼마 뒤, 새끼 거미가 쓸려 나간 자리로 큰 거미가 찾아온다. 그때 화자의 가슴이 “짜릿”해진다. 어쩌면 어미 거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 거미도 다시 문밖으로 쓸어버리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달라져 있다.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말하며 서러워한다. 이미 저질러버린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찌른다.
그리고 시는 여기서 한 번 더 깊어진다. 막 알에서 깨어난 듯한, 발도 제대로 서지 못하는 작은 새끼 거미가 나타난다. 그 모습을 본 화자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손을 내밀지만 작은 거미는 인간을 두려워해 달아난다. 화자는 그게 서럽다고 한다. 그는 그 거미를 종이에 받아 다시 문밖으로 내보내며, 이 작은 것이 엄마와 형제들을 만나기를 바라며 슬퍼한다.
나는 이 시에서 시대를 읽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저지른 무심한 실수로 거미 가족을 이산시켰다는 안타까움과 그들의 이별에 대한 슬픔,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미안함이 느껴질 뿐이다. 아무리 백석이 일제시대의 작가라 하더라도 모든 시를 시대의 은유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라」는 서사가 있는 시다. 그 서사는 역사보다 한 인간의 마음이 변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특히 “차디찬 밤이다”라는 한 줄이 오래 남는다. 차디찬 밤에 거미는 따뜻한 곳을 찾아 방 안으로 들어왔음직하다. 그런데 화자는 그 거미를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거미에게 방 안은 겨우 찾아든 따뜻한 피난처였을 텐데 인간에게는 그저 치워야 할 작은 벌레일 뿐이다. 그 무심한 행동 하나가 거미의 생사뿐 아니라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나는 거미들은 화자의 마음을 자꾸 붙잡는다. 어미 거미를 발견했을 때 그는 가슴이 “짜릿”해지고, 막 알에서 깨어난 듯한 작은 거미를 보며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들을 다시 문밖으로 내보낼 때마다 화자의 마음에도 미안함과 서러움이 차곡차곡 쌓인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된 작은 행동이 뒤늦게 마음속에서 되돌아와 그를 붙잡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들이니 시의 제목이 뜻하는 바도 조금은 이해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수라의 ‘수라’는 늘 싸움과 번뇌 속에 있는 존재다. 그렇다면 이 시의 ‘수라’는 무엇일까. 시 속에서 실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화자의 내면에서는 작은 싸움이 일어난다. 아무 생각 없이 거미를 쓸어버린 자신과 뒤늦게 미안해하는 자신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무심함과 연민이 서로 부딪히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시의 ‘수라’는 바깥 세계의 전쟁이 아니라 화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거미를 문밖으로 내보낼 때마다 화자는 서러워하고 슬퍼한다. 그 마음은 이미 저질러버린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쩌면 「수라」는 거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은 생명 앞에서 뒤늦게 깨어난 인간 마음의 번뇌를 보여주는 시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는 이 시가 늘 미심쩍었다. 거미 몇 마리 이야기로 끝나는 시가 왜 그렇게 자주 언급되는지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딘가 조금 부족한 느낌도 있었다. 마음을 세게 붙드는 무엇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야 조금 보인다. 작은 생명 앞에서 문득 멈추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뒤늦게 밀려오는 미안함과 슬픔.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짧은 떨림이 이 시의 중심에 있었다.
나는 그동안 이 시에서 큰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수라」는 거창한 의미를 앞세우지 않는다. 그저 미물에 불과한 거미와 한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마주 세워 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