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65

이육사의 <少年에게>

by 인상파

이육사의 <少年에게>


차디찬 아침이슬

진주가 빛나는 못가

蓮꽃 하나 다복히 피고


少年아 네가 낳다니

맑은 넋에 깃드려

박꽃처럼 자랐세라


큰江 목놓아 흘러

여을은 흰 돌쪽마다

소리 夕陽을 새기고


너는 駿馬 달리며

죽도 져 곧은 기운을

목숨같이 사랑했거늘


거리를 쫓아 단여도

噴水있는 風景속에

동상답게 서봐도 좋다


西風 뺨을 스치고

하늘 한가 구름 뜨는곳

희고 푸른 지음을 노래하며


그래 가락은 흔들리고

별들 춥다 얼어붙고

너조차 미친들 어떠랴(출전 『육사시집』, 이원조 편 서울출판사, 1946)




너조차 미친들 어떠랴


이육사의 「소년에게」는 소년의 출생을 알 수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차디찬 아침이슬이 맺히고 진주처럼 빛나는 못가에 연꽃 하나가 다복히 피어 있는 순간, 소년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출생의 풍경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다. 그런 꽃이 피어 있는 자리에서 태어난 소년이라면 그 존재 또한 남달랐을 것이다.


화자는 곧바로 “맑은 넋에 깃드려 / 박꽃처럼 자랐세라”라고 말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깨끗한 박꽃처럼 자라난 소년의 모습이다. 소년의 탄생과 성장은 연꽃과 박꽃 같은 자연의 이미지 속에서 맑게 그려진다.


소년이 자라나는 풍경도 자연 속에 놓여 있다. 큰 강이 목놓아 흐르고 여울은 흰 돌마다 소리에 석양을 새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소년은 점점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화자는 말한다.


“너는 駿馬 달리며

죽도 져 곧은 기운을

목숨같이 사랑했거늘”


여기서 죽도는 대나무로 만든 칼이지만,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나무의 곧은 기운이다. 대나무는 우리 문화에서 절개와 곧음을 상징한다. 소년은 그 대나무 같은 기운을 목숨처럼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화자는 말한다. 거리를 쫓아다녀도 좋고, 분수가 있는 풍경 속에서 동상처럼 서 있어도 좋다고. 떠돌며 살아도 좋고 한 자리에 서 있어도 좋다는 뜻일까. 중요한 것은 삶의 자리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정신이다. 어디에 서 있든 그 곧은 기운만은 잃지 말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에 이르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서풍이 뺨을 스치고 하늘에는 구름이 떠간다. 가락은 흔들리고 별들마저 춥게 얼어붙는다. 소년이 살아가며 마주하게 될 세상의 바람과 시련이 그 풍경 속에 스며 있는 듯하다.


시의 마지막은 앞에서 노래해 온 소년의 기상과는 조금 다른 결을 보인다. 연꽃이 피는 순간 태어나고 박꽃처럼 맑게 자라고 대나무 같은 곧은 기운을 사랑하는 소년은 이상적인 존재처럼 그려져 현실의 인물이라기보다 어떤 이상적인 정신의 형상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면 시의 어조가 갑자기 낮아진다.


“너조차 미친들 어떠랴”


이는 누군가를 향한 엄한 격려가 아니라, 이미 많은 것을 겪어 본 사람이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 구절은 타인을 향한 선언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향한 말처럼 읽힌다. 세상이 그렇게 흔들리고 별마저 얼어붙는 순간이 오면, 그 곧은 소년도 흔들릴 수 있다. 화자는 그것을 꾸짖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수도 있다는 듯이 말한다. 어쩌면 그 말 속에는 소년을 향한 이해와 연민이 함께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육사의 다른 시들을 떠올려 보면 이런 결말은 더욱 눈에 띈다. 「절정」이나 「광야」에서는 흔들림보다 끝내 버티는 정신이 강조된다. 그러나 「소년에게」에서는 조금 다른 얼굴이 보인다. 곧은 기운을 사랑했던 소년이라도 세상의 바람 속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 또한 한 사람의 삶일 수 있다고 인정하는 듯하다.


어쩌면 이 시의 소년은 이육사의 유년의 자아가 아닐까. 연꽃처럼 맑게 태어나 박꽃처럼 자라난 소년이 아니라, 세상의 거친 바람 속에서 곧은 기운을 지키려 애써 온 한 사람의 모습 말이다. 실제로 그의 삶은 미칠 지경에 이를 만큼 험난했다. 감옥과 망명, 끊임없는 방랑 속에서 그는 자신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마지막의 “너조차 미친들 어떠랴”라는 말은 다른 소년에게 건네는 말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게 곧은 기운을 사랑하며 살아왔지만 세상의 바람 앞에서 흔들릴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시인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도 괜찮다고.

조금은 어긋나게 살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험난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건네는 작은 위안 같은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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