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비〉
백석의 〈비〉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갯비린내에서 개비린내로
2행의 단시다. 비는 보이지 않는다.
제목은 ‘비’지만, 이 시는 비 오기 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를 맞이하려는 사물의 기척이 앞선다.
아카시아들은 어느새 흰 두레방석을 깔아놓고 있다.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자리는 마련되어 있다.
비는 아직 내리지 않았는데, 그 비를 받아낼 준비는 끝난 셈이다.
이 시의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땅 위에서 시작된다.
그 준비된 자리 위로 먼저 스며드는 것은 꽃향기가 아니라 개비린내다.
1행은 시각적인 이미지 속에 진한 꽃의 향기를 품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무들은 어느새 자리를 펴고 하늘을 기다린다.
그 흰 방석 위로 곧 비가 내려앉을 것이다.
꽃은 비를 피하기보다 받아들이려는 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꽃두레방석과 어울리지 않게, 2행에서는 코에 먼저 들어오는 것이 개비린내다.
환하고 고운 자리 위에 놓이기에는 너무 눅눅하고 비릿한 냄새다.
비가 오는 것을 개들이 먼저 알아채고, 그 바람에 번져 나온 냄새일까.
아니면 비가 막 치기 시작할 때, 땅속에 눌려 있던 습한 기운들이 올라오며
그 속에 섞여 있던 짐승의 냄새까지 함께 풀려난 것일까.
그도 아니면 비 오기 전의 그 습하고 비릿한 공기를
개비린내로 받아들인 것일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공기로 전해지는 물쿤한 냄새를
개비린내로 맡은 백석의 후각이 내게 전해진 이후,
나는 이 시의 ‘개비린내’를 오랫동안 ‘갯비린내’로 읽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 오기 전의 습한 냄새를 바다의 뻘 냄새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읽을 때 이 시는 바다 쪽으로 열려 있었다.
공기가 밀려오고, 습기가 번지고,
어디선가 물비린내가 번져오는 풍경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개비린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시의 중심이 바다에서 마을로, 풍경에서 살아 있는 것들 쪽으로 옮겨왔다.
그 속에는 비 오기 전 달라진 공기를 먼저 알아채고
괜히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개의 몸짓이 있다.
그 젖은 털과 들뜬 숨결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공기 속으로 퍼져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같은 비린내인데,
하나는 먼 데서 밀려오는 것이고
하나는 곁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그 사이를 한 번 건너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