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기척
나이의 기척
50대 후반이라고 적었다가, 다시 60에 가까운 나이라고 고쳐 적는 순간 이 놈의 나이가 문득 징그러워진다. 숫자는 같을 텐데, 표현 하나 바꿨을 뿐인데도 그 나이는 갑자기 나를 앞질러 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따라잡지 못한 채, 먼저 그 자리에 가 있는 나이.
누구나 제 나이를 사랑하며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를 잊고 지내다가도 달력을 교체할 때에야 비로소 나이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늘 한 발 늦게 도착한 사람처럼 서 있다.
언제나 나이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없다. 서툴고 허약했으며,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다. 앞서가거나 뒤처지거나 했다. 제때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기억이 드물다.
허둥대며 살아왔다.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붙잡겠다고 두 손으로 밀어 올리던 사람처럼, 잠시 멈추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시 굴러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또다시 그 바위를 밀어 올리던 날들.
그 사이에서 나이는 늘 먼저 와 있었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 못했는데, 나이는 이미 그 자리에 와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달력을 한 장 넘길 때마다 내 나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뒤늦게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십대에는 스무 살이 아득했고, 스무 살에는 서른이 멀게 느껴졌다. 서른에는 마흔이 남의 일 같았고, 마흔에는 쉰을 생각하는 일조차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늘 다음의 나이를 밀어내며 살아왔다. 나이는 언제나 아직 오지 않은 쪽에 있었고, 나는 그쪽을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며 여기까지 왔다.
쉰을 넘기면서는 앞자리가 바뀌는 일에 더는 마음을 쓰지 않게 된 줄 알았다. 어차피 넘겨도 그만, 넘기지 않아도 그만인 나이. 살 만큼은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 위에 서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가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보기도 한다. 할 일은 여전히 많은데, 그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한 채 가더라도 아주 억울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아쉽기는 하겠지만, 크게 통탄할 일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그렇게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문장을 만들어 본다.
그러나 그 문장은 끝내 내 것이 되지 못한다. 입 밖으로 꺼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면 어딘가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다.
조용한 밤, 불을 끄고 누워 있으면 아직 다 살지 못한 날들이 방 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미처 건드리지 못한 시간들이, 손도 대지 못한 채 그대로 쌓여 있는 것처럼. 그 기척이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둘러싼다.
나는 그 기척을 모른 척 눈을 감는다.
살 만큼 살았다는 말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완전히 기울지 못한 채 오늘의 나이를 견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