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을 읽는 자리
아파트 단지 내 아줌마 독서 모임이 1년이 되었다.
시간이 그렇게나 흐른 줄 몰랐다.
아니, 생각해보면 1년밖에 안 됐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것 같기도 하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시간이 이어졌다.
지나간 시간은
뒤돌아보지 않는 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늘 모임에서 한 사람이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모임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고,
자신은 이쯤에서 빠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그 사람이 떠나는 이유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나이도 같고,
책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고,
책 속에서 길을 찾으려는 사람.
깊이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우리는 같은 결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선정된 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굳이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살아온 시간들이 덤처럼 따라 나왔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책은 매개일 뿐이고
우리는 결국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믿었다.
한 달에 두 번,
1년 동안 이어진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믿어주는 관계쯤은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 쪽의 착각이었을까.
아줌마들이 모인 독서 모임에서는
자주 남편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남편이 없는 사람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람도 나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남편의 그늘 아래에서
경제적인 걱정 없이 살아간다.
나는 가끔 그 틈에서
살짝 밀려나 있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감정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을 알기에
없는 남편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끌어다 쓴다.
그 자리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2월부터 나는 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12시부터 6시까지.
그래서 오전 10시에 시작하던 모임 시간을
9시로 앞당겨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사람들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고,
오히려 일찍 시작하면 다른 일정을 소화할 수 있어 좋다는 말도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회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나는
모임이 있는 날이면 더 일찍 서둘렀다.
어머니를 깨워 센터에 보내고,
아이들 아침을 챙기고,
문고 문을 열기 위해 관리실에 들르고,
물을 끓이며 자리를 준비했다.
그 모든 일을 나는
당연한 일처럼 해왔다.
그 사람은 늘 조금 늦게 도착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아이고, 주인공은 늘 늦는다니까.”
가볍게 웃으며 덧붙인 말이었다.
거기에 특별한 뜻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내 나름의 인사였고
어쩌면 애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그 말이 상처가 되었고
비꼼처럼 들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말하는 쪽이 아니라
듣는 쪽이 느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내 말 속에
그런 뉘앙스가 없었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서두르고 있는 시간인데
그 말이 언짢았고
모임에 피해를 주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남편과 이야기도 나눴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힘든 사람이었다.
저혈압 때문에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날이면 더 힘들다고 했다.
그 사람에게는 9시라는 시간이
이미 버거운 시간이었고,
명상이나 운동으로 보내던 조용한 시간을 포기하며
그 자리에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변명처럼 말했다.
장난처럼 한 말이었다고,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같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같은 자리에서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겨우 끌어다 쓰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 시간을 어떻게든 비집고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나는 내 상황만 앞세우고 있었다.
뜻 없이 던진 것 같았지만
결코 뜻이 없을 수 없는 말은
나에게는 가벼웠지만
그 사람에게는
자신이 버티고 있던 시간 전체를 흔드는 말이 되었던 것 같다.
떠난다는 그 사람에게
나는 몇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래도 남아서 같이 가보자고
조심스럽게 붙잡아 보았지만,
모르겠다.
이미 마음을 정리한 사람을 붙잡는다는 건 부질없는 일이고,
떠나겠다는 사람을 붙잡는 일은 결례일 것이다.
앞으로 한두 번 더 얼굴을 내밀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자리는
슬며시 비게 될지도 모른다.
좋아서 시작한 자리가 불편함을 준다면,
누가 시킨 자리도 아니고,
억지로 버텨야 할 자리도 아닌 이상
굳이 지켜낼 이유가 있을까.
같은 책을 읽던 자리였지만,
우리는 끝내 같은 문장을 읽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강해 보여도
그 위에 얹힌 관계는 이렇게 허약할 수 있다는 것을,
책으로 맺어진 사이라면
조금은 너그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옹색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내가 스쳐 보낸 말 속의 불편함을
끝내 놓치지 않았던
그 사람의 감수성을 떠올리며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