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73

백석의 <광원(曠原)>

by 인상파

백석의 <광원(曠原)>


흙꽃 이는 이른 봄의 무연한 벌을

경편철도(輕便鐵道)가 노새의 맘을 먹고 지나간다


멀리 바다가 뵈이는

가정거장(假停車場)도 없는 벌판에서

차(車)는 머물고

젊은 새악시 둘이 나린다



광원, 시작과 밀려난 자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아직 따뜻해지지 못한 계절의 입구. 바람이 불면 꽃 대신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무연한 벌”이라는 말이 먼저 마음에 내려앉는다. 넓어서 확 트인 공간이 아니라, 넓어서 막막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딜 봐도 기댈 데를 찾을 수 없는 자리다.


그 벌판을 경편철도가 지난다. 그러나 이 철도는 우리가 아는 속도의 상징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노새의 맘을 먹고 지나간다”는 말이 붙는 순간, 기차는 무거운 짐을 묵묵히 짊어지고 험한 길을 견디는 짐승처럼, 그 벌판을 천천히 건너가는 존재가 된다. 빠르게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 채 지나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때의 경편철도는 단순한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화자의 마음이 밖으로 드러난 형상처럼 보인다. 무연한 벌을 가로지르며 서두르지 못하고,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채 이어지는 그 느린 움직임. 그것은 어쩌면 이 벌판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이 지닌 속도이자, 그가 감당하고 있는 어떤 무게일지도 모른다. 이 철도는 단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마음을 실은 채 그 벌판을 함께 건너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시는 처음부터 차갑게만 흐르지 않는다.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에도 어딘가 숨결이 깃든다. 속도를 잃은 대신 체온을 얻은 기차. 그것은 이 광원을 완전히 무정한 공간으로 굳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온기는 넓은 벌판 앞에서 너무 미약하다. 멀리 바다가 보이지만, 그 바다는 위로가 아니라 더 큰 공허를 불러온다. 정거장도 없는 벌판에서 차는 멈추고, 젊은 새악시 둘이 내린다.


무연한 벌판에 내린 젊은 새악시 둘은 느닷없는 등장이기는 해도, 이 공간에 어떤 생기를 불어넣고 있음은 분명하다. ‘광원’이라는 제목을 떠올리면, 그들의 앞에 놓인 길이 얼마나 멀고 막막했을지가 먼저 다가온다. 이름 붙은 역도 아니고, 맞이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벌판.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도착은 어쩐지 도착이라기보다, 던져진 시작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장면이 완전히 절망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이 새악시 둘은 마치 서부극에서 황야에 내려선 개척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빈손으로 도착해 거친 땅을 삶의 자리로 바꾸어 나가던 사람들처럼,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광원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존재들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이들은 막막함 앞에 선 사람들이면서도, 동시에 이 광원을 살아 있는 땅으로 바꾸어 갈 주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 아니라, 이제 막 누군가의 삶이 시작될 자리. 그 시작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 두 새악시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그럼에도 젊은 두 새악시는 끝내 광원 밖으로 밀려난 자로 남는다. 그것은 이들이 이 공간을 선택해서 들어온 존재라기보다, 어떤 사정에 의해 이곳으로 내몰린 존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거장도 없는 벌판에 내려진 순간, 이들은 이미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의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이들의 시작은 개척이라기보다 적응에 가깝고, 선택이라기보다 감내에 가깝다. 광원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과, 그 광원에 휩쓸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동시에 겹쳐 있다.


아마 이 시의 묘함은 거기에서 온다. 주인이 될 것 같은 존재가, 끝내는 자리를 얻지 못한 채 서 있는 상태. 시작하는 사람인데도, 이미 밀려난 사람처럼 보이는 상태. 그래서 이 장면은 쓸쓸함으로 남는다.


노새의 맘을 먹고 달리는 철도와 젊은 두 새악시는 서로 다른 존재이면서도 어딘가 닮아 있다. 제 속도를 내지 못한 채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지나가는 것, 그리고 선택하지 못한 자리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는 것. 그들은 모두 이 광원을 스쳐 지나가거나, 혹은 그 안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 시는 풍경을 보여주면서도, 그 풍경 속에 놓인 삶의 무게를 함께 드러낸다. 그리고 그 무게는 끝내 풀리지 않은 채, 바람 부는 벌판 위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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