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174

백석의 〈추일산조(秋日山朝)〉

by 인상파

백석의 〈추일산조(秋日山朝)〉


아츰볕에 섶구슬이 한가로이 익는 골짜기에서 꿩은 울어 산(山)울림과 장난을 한다


산山) 마루를 탄 사람들은 새꾼들인가

파아란 한울에 떨어질 것같이

웃음소리가 더러 산山) 밑까지 들린다


순례(巡禮)중이 산山)을 올라간다

어젯밤은 이 산山)절에 재(齋)가 들었다


무리돌이 굴러나리는 건 중의 발굼치에선가


추일산조


섶구슬이 익어가는 가을 아침의 골짜기에서 꿩의 울음이 먼저 산을 깨운다. 그 울음은 건너편 산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는데, 마치 산울림과 장난을 하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울음 하나가 산 전체를 흔들며 퍼져 나간다. 아직 사람의 자리는 드러나지 않고, 산은 그저 울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산이 깨어나면 시선은 산마루로 옮겨 간다. 산마루를 타는 사람들, 이른 아침부터 산마루를 오르는 사람은 새꾼들이었던가. 특정할 수 없는 그들은 물음 속에 머문다. 다만 그들의 웃음소리는 그 아침의 산빛처럼 투명하게, 파아란 하늘에 닿을 듯 높이 퍼지다가 더러 산 밑까지 흘러내린다.


꿩의 울음에서 사람의 웃음이 산을 가득 채우고 나면, 웃음의 주인공과는 다른 결의 사람이 등장하여 무리돌이 구르는 소리를 부른다. 순례중이 산을 올라간다. 그는 화자의 시선에 붙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산을 오른다.


어젯밤 이 산절에는 재가 들었다. 그래서 그의 발걸음은 어쩐지 그 재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밤의 의식과 이어진 아침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마치 재를 마친 절에 아침 공양을 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웃음이 흩어지던 산마루의 가벼운 기척과 달리, 그의 걸음에는 어젯밤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다시 산에는 소리 하나가 더해지는데, 그것은 중의 발에 밟혀 무리돌이 산 아래로 굴러내리는 소리다.


산 밑에서 산속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는 화자에게는 돌 구르는 소리만 들렸을 터이지만, 그 소리는 순례 중의 발꿈치가 산길의 돌을 건드리고, 그로 인해 잠시 걸음이 흐트러지는 장면까지 불러온다.


그러나 시는 그것을 끝내 확정하지 않는다. “중의 발굼치에선가”라고만 말할 뿐이다. 산을 깨우는 것은 꿩의 울음이었고, 이어서 산에 사람이 들어섰음을 알린 것은 새꾼들의 웃음소리였다. 그러나 이 돌 구르는 소리는 발꿈치가 돌에 닿는 감각, 순간적인 통증, 균형이 흔들리는 몸의 움직임까지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순례 중의 등산은 이 산길을 딛고 있는, 무게와 감각을 지닌 한 사람의 몸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섶구슬이 익어가는 풍경 속에서 꿩의 울음이 산을 채우듯 퍼져 나가다가, 그 사이로 인간의 자리가 조금씩 생겨난다. 웃음으로, 발걸음으로, 그리고 끝내 돌 구르는 소리로.


이 시는 자연의 소리로 열린 산의 아침 속에, 인간의 존재가 조용히 더해지는 순간을 그린다. 산은 그 모든 것을 품은 채, 그 아침을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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