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글 53

노인의 출정식

by 인상파

노인의 출정식


노인에게 그날은 하나의 ‘출정’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미용실에 머리를 다듬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이 아직도 바깥을 오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확인하는 자리. 그래서 휠체어를 거부한 것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어쩌면 마지막까지 붙들고 싶은 자존심의 형태였지도 모르겠다.


노인을 모시고 바깥출입을 처음 하는 입장이라 여간 걱정이 앞서는 게 아니었다. 두 달 넘게 자르지 않은 그의 듬성듬성한 머리는 산발이라고 하기도 애매했지만, 가을 끝의 정리되지 않은 밭 언덕에 멋대로 자라 허옇게 바랜 풀처럼 보였다.


워낙 완고해서 딸들도 아버지를 설득시킬 수 없다는 말을 보호자에게서 종종 들은 터라, 휠체어를 타지 않겠다는 그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나는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아냈다. 집 앞 5분 거리의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자르고 곧장 돌아오기로.


하지만 그 약속을 믿어서는 안 되었다는 걸,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어쨌든 빈 휠체어라도 끌고 나왔어야 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어디일까. 우리는 그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 살아간다. 치매에 걸린 노인은 때로 너무나 정상에 가까운 행동과 사고를 보이고, 정상이라는 나는 허둥대며 기억을 놓치기도 한다. 문제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움직인다는 데 있다. 서로 다른 시간 위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같은 곳을 보면서도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


그날의 외출은 노인에게 단순히 머리를 자르러 나선 길이 아니라, 두 개의 시간이 겹쳐진 채 걷는 길이었다. 노인은 과거의 자신으로 걷고 있었고, 나는 현재 그의 몸을 붙잡고 걷고 있었다.


주로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라 온 그는 미용실에 들어서자 뭔가 어긋났다는 듯한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낯선 공간에 들어선 그는 젊은 미용사가 하는 대로 의자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머리를 감기고, 다듬고, 말리는 동안에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맡겨진 사람처럼, 혹은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모든 과정이 끝나자 노인은 수염을 깎아달라고 했다. 나는 수염도 눈썹 밀 듯 간단히 정리해 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날 처음 알았다. 수염을 미는 일은 미용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용실에서 여성 머리를 자를 때 바리캉을 쓰기도 하니, 면도 정도는 눈썹을 다듬듯 상황에 따라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노인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자연스럽게 수염을 밀어왔던 사람이다. 그의 기억 속에서는 머리와 수염이 하나의 순서로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였다. 왜 수염을 안 깎아주느냐는 말에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부정당했다는 당혹감이 담겨 있었다.


그때부터 노인에게는 자신이 다녔던 이발소에 들러 수염을 밀어야 한다는 그 생각뿐인 것 같았다. 머리를 자르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은 힘없이 풀려버렸다. 노인에게 밀지 못한 수염은 단순한 수염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끝까지 완결하고 싶은 일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머리를 자르고, 수염을 밀고, 말끔해진 얼굴로 돌아오는 일. 그 익숙한 순서를 끝까지 이어가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 지점에서 나와 노인의 길은 갈라졌다. 나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일을 노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로 붙잡고 있었고, 나는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노인은 계속 가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 어긋남 속에서 우리는 다시 길 위에 서게 되었다.


길 건너 사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그가 말하는 이발소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위치는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을 모시고 가기에는 무리한 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설득해야 했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노인은 머리를 자른 미용실에서 50미터쯤 떨어진 남성 커트 전문점을 가리키며 그곳이 이발소라고 했다. 나는 그를 부축하며 그곳으로 갔다. 손님이 없던 가게의 주인은 노인을 알아보고는, 몇 년째 올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 불쾌한 분위기를 노인도 금방 알아챘다. 노인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에는 수염을 밀어줬으면서 지금은 왜 안 해주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둘 사이에 오간 말다툼은 어느 순간 내 몫이 되었다. 그 모든 탓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집에 가서 전기면도기로 깎아드리겠다고 했다. 노인을 데려갈 구실처럼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수염은 이발소에서 다듬는 것이라며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그날의 길은 노인의 집에서 자꾸만 멀어졌다. 노인은 당신이 다녔던 이발소를 찾아가겠다고 지팡이에 의존해 걸었다. 6차선 도로 건너편을 가리키며 저기 2층에 이발소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건물에는 음식점과 여성 뷰티샵, 동물병원만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이발소가 없다는 걸 직접 확인시켜야 했다.


결국 그를 부축해 도로를 건넜다. 비틀거리는 걸음이었다. 길을 건너자마자 상가 사이에 놓인 벤치에 겨우 앉혔다.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 거리라 바로 올 수는 없었다. 그 사이에 이발소를 찾느라 길을 헤매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마음이 불안해졌다.


혼자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노인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가족일 것 같아 딸과 통화를 시켜드렸다. 딸과의 대화는 아버지가 일단 집에 들어가 있으면 이발소에 모시고 가겠다는 쪽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안심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딸의 말을 이미 잊은 듯했다. 찾다가 만 이발소가 다시 떠올랐는지, 그 2층 건물을 가리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루 걸러 들어오는 실종 안내 문자의 장면이, 지금 이 길 위에 겹쳐지는 것 같았다.


2층 가게를 기웃거리다 나온 노인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자신의 기억을 의심했을까. 아니면, 끝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를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확인했으면서도 믿지 못한 사람처럼, 노인은 건물을 나서자마자 우리가 건너온 도로 맞은편을 바라보며 그곳에 이발소가 있다고 우겼다. 나로서는 그쪽이 노인의 집과 가까웠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다시 길을 건넜다. 눈앞에 커피숍이 보였다. 노인은 커피를 자주 마시는 사람이었다. 나는 더는 걷기 힘들다며 잠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자고 했다. 노인도 오래 걸은 탓인지 거부하지 않았다.


커피를 주문하는 사이 전화가 왔다. 노인의 아들이 근처로 오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위치를 설명하고 나니 커피가 나왔고,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아들이 들어왔다.


노인은 아들을 보고 소년 같은, 어색하고도 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커피숍에 앉아 있는 걸 어찌 알고 찾아왔느냐는 듯, 도통 신기하고 반가워하는 얼굴이었다.


노인을 그의 아들에게 맡기고 나는 커피숍을 나왔다. 우리가 건넜다가 되건너온 도로를 바라보았다. 달리는 차들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참 지켜봤다. 그러자 문득, 내가 그 도로 한가운데에 갇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가는 사람 곁에서 나 역시 조금씩 닳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 하루 위태로운 목숨 하나를 더 붙들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목숨이 노인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것이었는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독서록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