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글 54

어머니가 만든 자리

by 인상파

어머니가 만든 자리


어머니를 모시고 형제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여섯 형제가 한꺼번에 모인 것은, 아니 막내동생은 집을 고치느라 오지 못했으니, 추석 이후 처음이다. 다들 사정이 있어 어머니를 모시고 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일도 쉽지 않다. 게다가 어머니가 한 달 가까이 병원 생활을 하신 것도 있어 더더욱 그런 자리였다. 막상 식사자리에 앉고 보니, 마음이 먼저 어딘가를 더듬는다.


어머니를 모시는 입장에서 형제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해 왔다. 어머니는 이제 ‘그들’의 어머니가 아니라 ‘나만의’ 어머니라고 마음먹었다. 그들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버리듯,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내가 감당할 일은 나만 감당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내왔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게 요상하다. 이렇게 마주 앉으니, 다 비웠다고 믿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다고 그것을 꺼내어 놓을 수도 없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내가 너무 초라해질 것 같고, 이 자리 역시 금세 불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아직도 기대가 남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기대하고, 그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만큼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없으니, 나는 기대조차 접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비운 것이 아니라, 눌러두고 있었고, 이미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말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기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대해도 소용없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육칠 년이 지났다. 그때의 어머니는 아직 ‘어머니’라는 자리에 남아 계셨다. 약해지고 흐려지면서도, 내가 기대어 자라온 그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는 그 자리를 거의 내주고 말았다. 인지하지 못하니 감정도 드러내지 못하신다.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없고, 자식들이 둘러앉아 있어도 얼굴에는 어떤 미동도 없다. 그저 떠먹여주는 음식을 받아 드시고, 이따금 눈을 떴다 감았다 하실 뿐이다.


결국 비운다는 것은 감정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다만 깊은 데로 내려가 있을 뿐이다. 어떤 날, 어떤 자리에서 다시 올라올 뿐이다. 나는 그 마음을 다시 조용히 눌러 앉힌다. 어머니가 내 곁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쪽으로 마음을 데려와야 한다.

아직도 이런 감정에 휘둘리는 내가 너무 작고 작게 느껴져, 문득 화가 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제 누구의 어머니라기보다, 점점 작아져 가는 한 사람이 되어 내 옆에 앉아 있다. 형제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동안, 오래된 감정이 스치듯 올라왔다가 이내 가라앉는다.


이 자리는 어머니가 만든 자리다. 우리를 다시 한 번 마주 앉히고, 다들 속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각자 어머니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조용히 확인하게 한 자리. 그리고 결국, 내 마음이 어디로 돌아오는지를 조용히 보여준 자리.


나는 그저, 그 마음을 다 품지 못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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