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적경(寂境)〉
백석의 〈적경(寂境)〉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침
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었다
인가(人家) 멀은 산(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버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적막한 탄생
〈적경〉, 아이가 태어난 마을이 왜 이리 적막한 풍경인 것일까.
생명이 태어난 것에 대한 경이나 기쁨보다 삶의 무게가 먼저 느껴진다.
아들, 아들 하던 풍조 속에서 첫아들이라면 잔치라도 벌일 법한데, 그럴 만한 여력은 전혀 없어 보인다. 어린 산모는 혼자 아이를 낳고, 그를 뒷바라지하는 이는 혼자 남은 시아버지뿐이다. 캄캄한 부엌에서 미역국을 끓이는 시아버지의 모습은 따뜻하기보다 우선 처연하다.
어린 산모의 남편은 어떻게 된 것일까. 집을 멀리 떠나 돈을 벌러 간 것인지, 아니면 이미 사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어린 아내가 혼자 아이를 낳아야 했다는 사실만이 남는다. 그래서 시아버지가 부엌에 서서 미역국을 끓이는 장면은, 며느리를 향한 애정과 함께 이 집안의 빈궁한 살림살이를 동시에 드러내는 듯하다.
기쁨의 자리에 먼저 놓이는 것은 생계에 대한 걱정이었을까. 먹고 살 일이 막막해 태어난 아이를 앞에 두고 한숨을 먼저 내쉬었을까. 아이가 태어나도 입이 하나 더 늘었다는 삶의 무게가 마음을 누른다.
인가 먼 산중, 까치 한 마리가 배나무에서 짖는다. 그 울음이 이 집의 경사를 대신 알리는 듯하지만, 사람의 기쁨을 대신하기에는 어딘지 가볍고 멀다.
그런데 이어지는 마지막 결구는 이 마을의 적막함을 더욱 두텁게 한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났음을 알리는 장면일 것이다. 두 명의 아이를 얻은 마을이 이렇게 적막한 것은, 그 아이들이 번듯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집이 마을의 외따른 곳에 있다는 것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 집은 산국마저 어떤 국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 집 또한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이 느껴진다.
생명이 태어나도 마음껏 반길 수 없는 궁핍한 삶. 이 시는 그런 현실을 통해 마을 전체를 적막한 풍경으로 그려낸다.
분명 그곳에는 산모의 진통과, 세상에 나온 아이의 울음소리, 미역국 끓는 소리 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는 그 소리들을 모두 뒤로 밀어두고, 까치 울음소리만 원경으로 들려주며 적막하게 눈오는 풍경을 남긴다.
아마 이 적막은 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조차 온전히 누릴 여유가 없는 삶에서 스며나온 적막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