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하답(夏畓)>
백석의 <하답(夏畓)>
짝새가 발뿌리에서 날은 논드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어먹었다
개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늪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그 여름 논에서 여름이 된 아이들
여름날 아이들이 있는 논 주변 풍경은 생동감 그 자체다. 백석의 〈하답〉은 그 속에 몸을 담그고 살아가던 아이들의 한때를 불러낸다.
논두렁을 들어서니 아이들 발부리에서 뱁새 같은 작은 새가 푸르르 허공을 날아오른다. 그뿐이었을까.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고 하니 개구리는 또 얼마나 지천이었을까. 개구리들 또한 아이들 발밑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느라 부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노리는 뱀도 따라붙었을 것이다.
시골에서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거나 죽을 쑤어 먹던 것은 고기가 귀한 시절의 단백질 보충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논두렁에서 풀과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지핀다. 어떤 아이는 입김을 불고, 어떤 아이는 가지와 풀을 얹고, 어떤 아이는 개구리 뒷다리를 꼬챙이에 꿰어 들고 있을 것이다. 잘 붙지 않는 불에서 올라오는 매운 연기에 아이들은 입과 코를 막으며 기침을 해댈 것이다. 그 장면이 눈앞에 선하다.
이처럼 백석의 〈하답〉은 그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비로소 드러나는 세계다.
게구멍을 쑤시다 보면 물컹한 감촉과 함께 배암이 잡히기도 한다. 그 여름의 논 주변은 작고 연약한 것들과 그것을 노리는 것들이 함께 숨 쉬는 자리다. 아이들은 놀라 물러서기보다, 그 질척한 생의 한복판에 그대로 손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래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호기가 되었을 터.
게구멍에서 물큰한 뱀을 만났을 때의 아찔함도 잠시, 그 뱀을 잡은 아이는 그중에 가장 득의만만하여 그날의 이야기를 제 것으로 만든다. 놀라 손을 빼기보다 끝내 움켜쥐고 있었던 그 순간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용기가 되고 자랑이 되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몇 날 며칠 아이들 입에 오르내렸을 것이고, 손끝에 남은 그 물컹한 감촉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내 개울가로 내려가 물속을 들여다보며 버들치를 맨손으로 잽싸게 훑어 올리고, 손가락에 걸려든 펄떡이는 비린 것을 오도독 씹어 먹으며 돌다리에 앉아 젖은 몸을 말렸을 터. 그 모습은 물가에 내려앉아 먹이를 낚아채고 깃을 다듬는 물총새와 다르지 않다.
물속을 들여다보던 그 순간, 아이들은 자연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 스며든 존재가 된다. 시인은 그 장면을 물총새로 바꾸어 놓으며, 사람과 자연의 경계가 풀리는 찰나를 붙잡는다.
〈하답〉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그 여름을 살아보게 한다. 손에 남아 있던 물컹한 감촉, 햇볕에 달궈진 살갗, 젖었다가 마르던 옷의 감각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여름은 지나간 계절이 아니라, 몸에 남아 있는 계절이 된다. 그래서 한 번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시를 읽고 난 뒤에도 “잘 읽었다”가 아니라, 한동안 몸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느낌이다. 논둑에 앉아 있는 것 같고, 젖은 옷이 등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고, 따가운 볕이 아직도 팔뚝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지금도 나는, 그 여름 논에서 아이들과 함께 돌다리 위에 앉아 몸을 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