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미명계(未明界)>
백석의 <미명계(未明界)>
자즌닭이 울어서 술국을 끓이는 듯한 추창(鰍湯)집의 부엌은 뜨수할 것같이 불이 뿌연히 밝다
초롱이 히근하니 물지게꾼이 우물로 가며
별 사이에 바라보는 그믐달은 눈물이 어리었다
행길에는 선장 대여가는 장꾼들의 종이등(燈)에 나귀눈이 빛났다
어데서 서러웁게 목탁을 뚜드리는 집이 있다
미명계, 밤을 지나온 자리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은 시간, 밤과 아침 사이에 걸린 어스름한 자리다. 닭이 자주 울어대니 추탕집에서는 술국을 끓일 것이고, 어스름한 길에 어스름한 초롱을 세우고 물지게꾼은 우물로 향한다. 행길에서는 선장을 대어가려 장꾼들이 나귀를 몰고 나선다. 그것뿐인가. 어디선가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까지 더해지며 하루의 시작을 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새벽은 추탕집의 불빛과 물지게꾼의 초롱처럼 그리 밝지 않고 ‘뿌연히’, ‘히근하다’. 그것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화자의 시선에 그들의 움직임이 또렷하게 들어오기보다는, 어딘가 물기 어린 눈으로 번져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불빛은 환하지 않고 뿌옇게 번지고, 초롱은 밝기보다 희미하게 스며든다. 이 흐릿함은 단순히 등불의 밝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별 사이에 걸린 그믐달 또한 눈물을 머금은 듯 보이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탁 소리 역시 맑게 울리기보다는 서럽게 번진다. 이처럼 이 새벽의 사물들은 제 모습대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의 마음을 지나며 조금씩 달라진다.
그는 그 시각, 무슨 연유로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자로 남게 되었을까.
이 미명계는 단순한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지나온 밤이 그대로 스며 있는 시간처럼 읽힌다. 하루는 이미 시작되고 있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자는 아직 밤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새벽은 누구에게나 같은 새벽이 아니라, 그 자리에 깨어 있던 한 사람의 새벽으로 다가온다.
그는 왜 그 시간에 깨어 있었던 것일까.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이 시의 결로 보아 그는 그들과는 조금 다른 자리의 사람이다. 그는 새벽을 맞이한 사람이 아니라, 잠들지 못한 채 밤을 끝까지 지나온 사람에 가깝다.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화자처럼, 그 또한 그 밤을 헤매다 미명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멈춰 선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막 시작되는 하루의 기운이 아니라, 끝내 사라지지 못한 밤의 어둠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새벽은 밝아오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걷어내지 못한 마음이 차가운 공기 속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다.
미명계.
하루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는 아직 밤에 머물러 있다. 이 새벽은 세상이 밝아오기 전의 시간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지나온 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목탁 소리는, 그 밤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서럽게 울린다.